박형욱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2일 첫 비대위 회의 후 “2025학년도 의대 모집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3000명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갑자기 6000, 7500명을 교육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이를 무시하면 의대 교육환경은 파탄 날 것”이라고 했다.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해선 “의미가 없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현재 협의체에 참여 중인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와 대한의학회를 향해서도 “무거운 짐을 벗고 나오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고 했다. 의·정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골이 더 깊어지는 양상이라 우려스럽다.
의협 비대위의 내년 의대 모집 중지 주장은 기존의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지금 교육 인프라로는 7000명 규모 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신입생을 뽑지 말고 내년에 복학할 3000명만 교육하자는 얘기다. 수능도 끝났고 건양대 등 일부 대학에선 이미 수시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의대 모집을 중지하라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무책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입시업계에선 “올해 입시 자체를 무력화하자는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오죽하면 의료계 내부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오겠나.
의협 비대위가 탄핵당한 임현택 전 의협 회장보다 더 강성으로 치닫고 있어 실망스럽다. 강경한 전공의·의대생들이 비대위원 40%를 차지해 이들의 입김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전제조건을 안 들어주면 여·야·의·정 협의체에 불참하겠다고 버티고, 협의체에 참여 중인 두 단체마저 나오라고 압박하는 건 국민 비호감을 키우는 처사다. 의협 비대위의 최우선 과제는 정부와의 협상이 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협의체 참여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불만이 크더라도 여기에 나와서 정부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국민은 의료계가 정부 탓을 하는 것 외에 사태 해결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있다. 의료 공백으로 환자·국민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정작 국민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사들은 방관하고 있다는 원성이 높다. 협의체 설치를 처음 제안한 더불어민주당은 “전공의 참석부터 설득해야 한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국민에게 성탄절 선물을 안겨드리겠다”고 한 여권은 변죽만 울리고 있다. 누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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