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새해 예산심사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민원성 사업에 급히 예산을 밀어 넣어주는 식의 비합리적 관행 탓에 최근 4년간 최소 2500여억원의 세금이 부당 편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6일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를 통해 2021년부터 올해까지 ‘국고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 문예회관 건립지원, 체육진흥시설 지원, 문화관광자원 개발 조성 등 지방이양사업 20건에 국비 2520억원이 편성됐다고 밝혔다.
이 중 13개 사업은 지자체가 지역 국회의원실에 민원을 넣어 예산편성을 요구했고, 나머지 7개 사업은 동호회 민원 등이 제기되자 국회의원이 자체적으로 지자체 협의 없이 독자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렇게 매년 연말 국회의 예산안 처리 막바지에 급히 편성되는 사업 예산은 타당성 등 면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못했고, 현재 실집행률 부진 등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강원도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사업’이 대표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사업이 지방이양사업에 해당하고, 예비타당성 검토 등 사전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고보조금 지원을 반대했지만, 강원도 측의 지속된 민원에 국회는 지난해 말 사업 재기획을 전제로 국비 예산 1000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강원도는 올해 6월까지 구체적 사업계획 없이 명칭만 바꿔 당초 계획대로 공연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자체 예산만으로 추진 중인 울산시 등과 형평성 문제가 있는 지점이다.
지자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예산편성을 추진한 충남 아산시 ‘체육센터 조성사업’도 대표적이다. 시는 지역 의원실로부터 총사업비 30억원·국비 9억원 규모의 사업 추진 검토를 요청받은 후, 탕정면 일대가 공공기관 유치 목적으로 지정돼 있고 재정 여력도 부족해 추진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국회 예산심의 단계에서 기재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산안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정을 들어 증액이 이뤄졌다. 이후 시는 정당 현수막 등을 통해 예산편성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현재 사업부지와 자체 재원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감사원은 국회에서 비합리적인 예산 끼워넣기가 반복될 수 있던 원인으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국비 지원이 가능한 사업과 불가능한 사업의 구분이 일부 불명확하게 규정돼 자의적으로 해석·운영될 여지가 있는 점을 꼽았다.
이에 기재부에 해당 시행령의 지방이양사업의 세부내용을 정비할 것을 통보하고, 정부의 예산 증액 동의권을 실효성 있게 행사할 것을 통보했다. 또 이미 국비가 편성된 20개 사업 중 예산이 교부되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는 재원과 함께 해당 사업을 지방에 이양한 취지와 국고보조금 금지 사업의 규정에 부합하게 사용될 수 있게 조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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