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페이스’의 흥행세가 만만찮다. 파격적인 내러티브,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충격적인 반전과 서스펜스로 모처럼 청불 등급 스릴러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진은 유망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다. 어느 날 그의 약혼녀 수연은 두 사람의 관계에 회의를 느낀다는 영상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성진은 괴로워하지만 이내 수연과 살던 집에서 다른 여성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비밀이 있다. 이 집의 벽 너머에는 은밀하게 봉인된 비밀의 공간이 있고 수연은 이곳에서 성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아름다운 저택 뒤에 숨은 밀실, 그사이에 걸린 거울 사이로 작동하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사이의 권력관계. 밀폐된 공간의 장력을 최대한 활용한 카메라의 움직임. 시종일관 관객을 몰입시키는 영화의 에너지는 분명 김대우 감독의 연출력에 일정하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영화를 가장 흥미롭게 하는 이 요소들, 이를테면 아름다운 저택과 밀실의 공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동하는 시선과 권력의 교환. 충격적인 플래시백을 통한 반전 등이 원작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면?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콜롬비아 감독 안드레스 바이즈의 1975년 영화 ‘히든 페이스’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물론 감독은 원작과 차별화를 시도한다. 이는 주로 인물들의 관계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결과 복수의 드라마는 한결 선명해졌고 결말도 친절하게 정리되었다. 성적인 표현의 수위는 원작보다 높아졌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가 한국적 정서에 맞춘 로컬화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얽매이지 않은 퀴어 코드를 통해 인물들의 욕망을 더욱 집요하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가? 동의하기 쉽지 않다. 섹스를 더 농밀하고 관능적으로 묘사한다고 욕망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원작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가 영화의 결말이다. 영화가 끝나도 해결되지 않고 남겨진 상황의 딜레마. 그 이후 선택에 대한 궁금증, 욕망의 민낯은 그대로 남겨져 있고 그 앞에 선 남자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는 여전히 집요하게 생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메이크의 결말에서는 그 에너지가 사라진다. 영화가 끝난 후에 이어질 그들의 삶, 선택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어쩐 일인지 리메이크 속 여성들은 훨씬 속물적이고 노골적이고 전형적으로 변화했다. 수연과 미주에게 부여된 주인과 노예의 퀴어 코드는 두 사람의 욕망을 집요하게 하는 게 아니라 기괴하게 한다. 이렇게 여성 캐릭터들을 기괴하게 변형시킨 복수극을 만드는 것 외에 더 나은 욕망의 서사를 위한 상상력은 불가능했을까? 결말은 놀랍다기보다는 어이없게 느껴진다. 여성 캐릭터들을 그로테스크하게 비튼 뒤에 그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남성 캐릭터를 세운 이 영화의 결말은 실은 한국영화에 매우 뿌리 깊은 시선이다. 그 시선에 의해 영화는 초반의 참신함을 반납하고 늪 속으로 들어간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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