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오죽한옥마을에 13.2∼16.5㎡(4∼5평) 남짓한 작은 한옥이 있다. 한옥 처마 밑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방짜수저체험장이란 현판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방짜수저를 만드는 김우찬 장인의 작업장이다.
방짜수저는 구리와 주석을 정확한 비율로 섞은 질 좋은 쇠를 달구어 망치로 두드려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 방짜는 구리 600g(1근)과 주석 168.75g(4.5냥)을 섞은 것인데 정확한 비율로 따지면 구리 78%, 주석 22%다. 구리가 조금이라도 더 들어가면 쇳덩이가 딱딱해서 망치로 칠 수 없고, 거꾸로 주석이 더 들어가면 망치질할 때 쇠가 터지고 만다. 방짜를 참쇠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질이 좋다는 뜻이다.
1992년 16세에 방짜수저의 세계에 입문한 장인은 40세이던 2016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 해마다 전승 공개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장인의 작업은 전 과정을 손으로 하다 보니 복잡하고 수고와 노력도 보통이 아니다. 장인은 “전통방식의 방짜수저 한 벌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흘 동안 두드리고 펴고 다시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구리와 주석을 녹여 손가락 크기의 무디판(거푸집 격)에 부어 식히면 무디가락(쇳가락)을 얻는다. 무디가락 한 개가 수저 하나다. 무디가락이 화덕에서 붉게 변하면 꺼내 망치로 두드린다. 수십 차례 담금질에 이어 두드리기를 수백 번 반복해 단단하게 만든다. 그다음 숯불에 달군 쇠를 모루에 올려놓고 위아래 뒤집어가며 망치질을 해 수저의 기본모양을 만든다. 15회 이상 담금질을 되풀이하며 두들긴 수저는 조직이 치밀해져 강도가 높아지고 광택이 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망치 자국 울퉁불퉁한 수저를 나무틀에 고정한다. 그런 뒤 호비칼이라 불리는 쇠칼로 바닥을 깎고 모양을 잡아가며 불에 달궈지며 생긴 때를 한 겹씩 벗겨낸다. 그러면 비로소 반짝이는 놋쇠가 드러난다. 날카롭고 뾰족한 칼로 머리와 손잡이에 문양을 새기고 쇠기름으로 광을 내면 방짜수저 한 벌이 탄생한다.
방짜수저는 종류가 다양하다. 생김새에 따라 망치자국이 있는 막수저, 무늬가 없이 두툼한 온간자, 가늘고 약한 반간자, 자루 끝에 무늬가 있는 꼭지수저로 구분한다. 방짜수저는 두드려서 만들기 때문에 가볍고 녹슬지 않는다.
식중독균을 없애는 작용도 한다. 그래서 방짜수저를 사용하면 웬만한 입병은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거지가 깡통을 차도 숟가락은 꼭 방짜를 쥐고 다녔다는 옛말도 있다.
조선 후기까지 많이 사용됐던 방짜수저는 1950년대 양은 그릇이 보급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장인의 집안은 4대째 방짜수저를 만든다. 작업실 한쪽에는 부친에게 물려받은 작업도구들이 놓여 있다. 하나같이 손때가 새까맣게 묻어 반질거린다.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쓰다가 지금은 김우찬씨가 쓰고 있지만 얼마 뒤부터는 아들 김종원씨가 물려받을 계획이다. 5대째 가업을 잇는 집안이 된다.
“전통이라는 자체는 돈을 보고 좇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킴이고 쟁이니까 불씨가 안 꺼지게끔 불씨를 살려서 대물림하려는 것이다.” 김우찬 방짜수저장의 전통을 잇는 끈기의 망치질 소리는 오늘도 힘차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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