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프랑스 정부, 62년 만에 붕괴… 마크롱도 퇴진 압박

입력 : 2024-12-05 21:30:00 수정 : 2024-12-05 20:16: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하원, 바르니에 총리 불신임안 가결

좌파·극우 손잡고 찬성 331표로 통과
임명 90일만… 5공화국 역사상 최단명
예산안 ‘의회 패싱’ 발단… 정국 대혼돈
정치적 기반 허약 ‘예견된 사태’ 지적

野 “대통령 책임 커… 조기 대선 촉구”
마크롱, 사임 요구 일축… 총리 물색 집중

“프랑스에는 더 이상 정부가 없습니다.”(르몽드)

4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이 미셸 바르니에 총리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하면서 62년 만에 정부 붕괴 사태가 발생했다.

 

박수 치는 佛 의원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원내대표(가운데)를 포함한 의회 하원의원들이 4일(현지시간) 파리 하원의사당에서 정부 불신임안 투표를 앞두고 열린 토론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파리=신화연합뉴스

이날 현지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불신임안은 가결정족수(288명)를 훌쩍 넘긴 의원 331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로써 지난 9월5일 임명된 바르니에 총리는 90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며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다.

바르니에 총리는 불신임안 투표 전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고별연설’을 남겼다. 그는 “3개월 동안 프랑스 국민의 총리로 일하며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그를 지지하는 범여권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나 이번 불신임안을 발의하고 찬성표를 던진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과 극우 국민연합(RN) 소속 의원들은 자리를 비운 채 투표에 참여했다.

정부 불신임안 가결은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두 번째이자, 최초 사례인 1962년 샤를 드골 대통령 당시 조르주 퐁피두 내각 붕괴 이후 62년 만이다.

사태의 발단은 바르니에 총리의 ‘의회 패싱’이었다. 지난 2일 바르니에 총리가 내년도 예산안에 속하는 사회보장 재정법안을 헌법 49조3항을 이용해 의회 표결 없이 통과시켰고, 이 법안에 반대해온 NFP와 RN은 즉각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바르니에 총리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6.1%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목표로 사회보장 재정안의 예산을 삭감했는데, 야당 모두 사회 불평등 심화 및 소비자·기업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바르니에 내각의 정치적 기반이 허약했던 탓에 내각 붕괴는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7월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NFP 출신 인사가 아닌 우파 공화당 출신 바르니에를 총리로 지명했는데, 통상 원내 1당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는 관례를 깬 것이라 좌파연합의 반발이 거셌다.

바르니에 내각을 무너뜨린 야당은 이제 마크롱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극좌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마틸드 파노 대표는 불신임안 가결 이후 “우리는 이제 마크롱의 퇴진을 요구할 것”이라며 “조기 대선을 촉구한다”고 밝혔고, 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도 “현 상황에 대한 마크롱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며 “대통령을 향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2027년 3월까지다.

특히 2022년 대선에서 마크롱에 패배했던 르펜 대표가 조기 대선을 통해 집권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르펜 대표는 최근 유럽연합(EU) 예산 횡령 혐의로 징역 5년과 피선거권 박탈 5년형을 구형받아 차기 대선 출마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이에 내년 3월 말로 예정된 선고 전 조기 대선에 출마, 사법리스크를 해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임 요구를 일축하고 후임 총리 물색에 집중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 기념식이 열리는 7일 전 새 총리를 지명할 계획이며,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세바스티앙 르코르뉴 국방장관과 범여권 인사인 프랑수아 베이루 등이 하마평에 올라있다. NFP의 반발을 고려해 좌파 측 인사를 발탁할 경우에는 사회당 출신 베르나르 카즈뇌브 전 총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바르니에 내각 붕괴로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무산됐다. 새 총리 지명을 서두른다 해도 연내 새 예산안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미국처럼 ‘셧다운’(정부 업무 일시정지) 사태로 이어질 확률은 낮다.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될 때까지 올해 예산안을 바탕으로 지출을 집행하는 긴급 입법을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안유진 '아찔한 미모'
  • 안유진 '아찔한 미모'
  • 르세라핌 카즈하 '러블리 볼하트'
  • 김민주 '순백의 여신'
  • 한지은 '매력적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