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주도권 논란 속 공수처 가세
김용현·이상민 일제히 출금 신청
법원, 중복 수사에 “협의·조정하라”
특검 가동되면 수사권 넘어갈 듯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2·3 비상계엄’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전방위적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기관 간 수사 경쟁이 과열되며 ‘중복 수사’에 따른 비효율과 혼란도 현실화하고 있다. 법원은 수사 효율을 이유로 이들 기관에 “협의를 거쳐 조정해 영장을 청구하라”고 진화에 나섰다. 상설특검을 비롯한 특검이 도입될 경우 수사권은 결국 특검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들 ‘각개전투’ 양상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9일 사태의 핵심 인물 소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경찰 특수단은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이른바 ‘충암파’로 불리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할 것을 통보하고 일정을 조율 중이다.
경찰 특수단은 전날엔 이 전 장관과 여 전 사령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등 4명을 긴급 출국 금지 조치했다.
이날까지 경찰이 접수한 고발은 6건, 피고발인은 12명으로 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를 내란 혐의로 고발해서다. 경찰의 수사 대상자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이 전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이다. 경찰은 국방부 관계자 4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8명 등 총 12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마쳤다고 밝혔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이날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정진팔 전 계엄부사령관, 전날엔 김창학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여 전 사령관 등에 대해서도 소환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수본은 위헌·위법한 계엄 포고령을 작성한 주체와 경위 등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창식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국방부가 관련 법리 검토를 했는지에 대한 세계일보 질의에 “없다”고 답했다.
공수처도 가세했다. 공수처는 이날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등을 수사해 온 이대환 수사3부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 밝혔다. 처·차장을 제외한 검사 11명, 수사관 36명 중 검사 8명과 수사관 20명이 우선 투입됐다. 공수처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계엄 사건 수사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오동운 처장이 전날 검경에 발동한 계엄 관련 사건 이첩 요청권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검경은 수사 대상자들과의 관계로 수사 공정성 논란이 있다”며 “고위 공직자의 부패 범죄 척결을 위해 설립된 독립 수사기관인 공수처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검경 간 수사 ‘갈등’ 조짐까지
검경, 공수처가 계엄 사태와 관련해 동일인에 대한 유사한 내용의 영장을 신청 또는 청구하면서, 법원은 이들 기관에 “수사의 효율과 수사 대상자의 기본권 보호 등을 고려해 조정하라”고 요구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6일 경찰 특수단은 검찰을 통해 김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는데, 같은 날 공수처도 김 전 장관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가 이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공수처가 청구한 모든 영장이 기각됐다고 한다. 김 전 장관과 이 전 장관에 대해선 검경과 공수처가 일제히 출국 금지를 신청하기도 했다.
검경 간 수사 주도권 경쟁은 갈등으로 번지는 조짐까지 나타난다. 검찰 특수본이 이날 방첩사령부 등을 압수수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에선 “검찰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경찰 특수단은 7일 검찰에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는데, 이와 별개로 하루 늦게 법원에 영장을 청구한 검찰 특수본이 압수수색한 데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경찰 일각에선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수사 상황이 새어 나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특히 김 전 장관과 관련해 검찰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경찰이 검찰에 김 전 장관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한 이틀 뒤인 8일 오전 검찰 특수본은 김 전 장관을 긴급 체포했다.
검경, 공수처는 너도나도 ‘내란죄 수사권’을 주장한다. 경찰은 “내란죄는 경찰의 수사 권한”이란 입장이다. 검찰과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은 없지만 직권남용죄 직접 관련성을 들어 수사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수처는 검찰과 달리 관련 규정이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공수처법)에 있다며 우위를 주장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런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며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천 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수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기소 절차의 적법성이나 증거능력 문제로까지 이어지기에 사법부로서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며 “어느 기관이 수사할 수 있게 인정할 것인지, 그에 따라 영장을 발부할 것인지는 굉장히 중요한 재판 사항”이라고 말했다.
◆檢만 기소 가능…특검 귀결되나
법조계에선 ‘내란죄 기소권’은 검찰에 있는 만큼, 검찰이 수사를 주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긴 늦었다”며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해 수사 주도권은 검찰로 넘어오게 돼 있다”고 했다.
검찰 내부에선 검찰의 수사 독립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하언욱(변호사시험 3회) 남양주지청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 “헌법 체계를 무너뜨린 윤 대통령, 관련 국무회의에 참석하고도 이번 상황에 별다른 의사 표시가 없는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특수본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는지 걱정된다”고 썼다. 다만 검찰 특수본은 법무부 보고 없이 대검 지휘를 받고 있다.
특검이 가동되면 특검 수사로 수렴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검으로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특검은 (국회 통과 시) 출범까지만 적어도 한 달 걸릴 것”이라며 “이번처럼 분초를 다투는 사건의 초동수사 단계에선 동시다발적 소환 조사와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