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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사이, K반도체 생존의 길은? [더 나은 경제, SDGs]

입력 : 2024-12-16 11:51:16 수정 : 2024-12-16 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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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무부는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포함한 첨단 반도체 제품에 대한 대중국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제재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HBM 외에도 27종의 첨단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고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이번 제재의 근거로 “HBM이 첨단 군사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하고, 비전문가들도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할 수 있는 장벽을 낮추는 한편 광범위한 사이버 공격과 인권 침해적 대규모 감시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제시했었다.

 

이 제재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국가는 한국이다. HBM 생산능력을 갖춘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미국뿐이다.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과반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그 뒤를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이 잇는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합치면 점유율이 무려 90% 이상이다.

 

반도체 산업에 전력투구하는 중국에 한국 제품 수입은 필수적이며, 최근 한국 반도체 기업의 현지 매출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중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3% 늘어난 11조2000억원을 기록했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56% 증가한 4조2000억원에 달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제재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 “국제수출통제체제 논의 상황과 업계 영향 등을 종합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안이한 대응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본과 네덜란드 등 33개국이 면제국 명단에 포함된 것과 달리 한국은 제외됐는데, 면제된 국가들은 이미 미국의 반도체 장비 대중 수출 제한 조치에 자발적으로 동의한 바 있다. 이들 면제국은 반도체 장비 제조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직접적인 타격이 미미한 게 사실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명확한 조치 없이 머뭇거림으로써 미국에 부정적 신호를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더욱 큰 문제는 한국 정부가 FDPR 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구상하는 등 실질 파급효과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FDPR은 HBM을 단독 제품으로 수출하는 것을 규제하기 때문에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인공지능(AI) 가속기 등의 패키지 제품 형태로 수출하면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의 복안으로 보이는데, 다수의 전문가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미·중 간 반도체 갈등이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하면서 향후 제재 범위나 형태가 지속해서 변화·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대응해 지난 9일 미국의 AI 칩 제조업체 엔비디아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조사를 개시했다. 이는 엔비디아가 2020년 이스라엘 정보기술(IT) 기업 멜라녹스 인수 시 특정 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미국의 기술·무역제재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엔비디아 주가는 하락했고, 중국 시장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엔비디아 매출의 약 17%가 중국에서 발생하는 만큼 이에 따른 충격은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엔비디아와 최신 GPU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에도 적지 않게 미치고 있다.

 

미국은 대중 견제뿐 아니라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설계를 주도하는 대신 생산은 한국·대만 등에 맡기겠다던 미국은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자국 내 생산거점 확보로 전략을 수정했다.

 

실제로 미 정부는 이른바 ‘칩스법’(반도체지원법)을 통해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기업에 527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자국 기업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폴라반도체, TSMC, 글로벌파운드리, 마이크론, 인텔 등 반도체 기업 대부분은 이미 보조금이 확정받은 바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 확정받지 못한 상황이다.

 

미 상무부의 반도체산업육성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 현황을 보면 대부분 기업이 예정대로 받고 있다. 폴라반도체는 1억2300만달러를, TSMC는 66억달러를 각각 확정받았으며, TSMC는 추가로 50억달러의 저리 대출도 받았다. 글로벌파운드리는 15억달러를 지원받았고, 마이크론은 61억6500만달러를 확정받았다. 인텔은 처음 예정된 85억달러에서 78억6000만달러로 감소됐으나, 국방부에서 30억달러 규모의 추가 계약을 수주해 총 지원금은 108억6000만달러로 증가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64억달러와 4억5000만달러의 보조금을 신청했으나, 아직도 결정된 바 없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인 비벡 라마스와미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 내정자는 반도체 보조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도 보조금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임기 종료 전까지 보조금 예산을 확정 지으려 노력 중이지만, 만일 지연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재협상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은 항상 우리 편’이라는 믿음 아래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 중국이 독자 노선을 걷고,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면서 한국은 더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특히 미국·일본·대만과의 반도체 동맹에서 소외된다면 그 파장과 리스크는 상상 이상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미중 반도체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이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게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태민 UN SDGs 협회 수석연구원 unsdgs.taemin@gmail.com

 

*김 수석연구원은 인텔의 대외협력 자문역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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