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황태자·소통령’ 후광 업고 정치 입문
‘명품백 사과 요구’·‘김 여사 문자 읽씹’ 등
비대위원장·당 대표 거치며 尹과 충돌
與 의원들 “대통령과 소통할 줄 몰라”
계엄 사태 후에도 소신 없이 우왕좌왕
‘윤석열 황태자’, ‘소(小)통령’ 등 화려한 수식어를 안고 정치권에 뛰어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전격 사퇴했다. 그는 국회로 몰려든 지지자들을 향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그 스스로 “당대표에서 쫓겨난다”고 표현했을 만큼 극명한 추락이었다. 대통령의 후광을 엎고 정치에 나섰지만, 그만의 소신과 정치력을 보여주기보단 거듭된 ‘윤·한 갈등’ 속에서 ‘초보 정치인’의 한계를 증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더십과 명분,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한 대표의 대권가도엔 비상등이 켜졌다.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 정치력 한계
여권 내에선 한 대표의 ‘정치력 부재’가 ‘한동훈 체제’ 붕괴를 가속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10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한 대표는 7·23 전당대회에서 약 63%라는 당원의 지지와 기대를 엎고 정치권에 재등판했다. 이후 약 5개월 동안 소위 ‘친한(친한동훈)계’로 뜻을 함께한 의원은 20여명. 하지만 이번 탄핵안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12명에 불과했다. 뒤이은 친한계 최고위원(장동혁·진종오)의 사퇴도 막지 못했다.
당초 친한계를 자처한 의원은 국민의힘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숱하게 반복된 ‘윤·한 갈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 대표가 지난해 12월 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전당대회를 거쳐 대표직에 임하는 내내 윤 대통령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김건희 명품백 사과 요구’, ‘이종섭·황상무 거취 논란’, ‘문자 읽씹 논란’, ‘김경수 복권 반대’, ‘의대 증원 유예’ 등 각종 현안에서 한 대표는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거나 공개 충돌도 불사했다.
이에 용산과 한 대표 사이에서 여당 의원들도 갈팡질팡했다. 한 초선 의원은 “한 대표가 대통령의 ‘가장 아끼는 후배’라고 하니 더 잘 소통할 줄 알았다”며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더라도 한 대표가 먼저 다가가 풀려는 시도를 해야 했는데 한 대표는 그런 소통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더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탄핵 국면에서 한 대표의 정치력 부재는 더욱 뼈아팠다. 특히 의원총회에서 공개적으로 친윤(친윤석열)계와 벌인 설전이나 법무부 장관 시절 야당을 향해 던진 직설적 화법을 같은 당을 향해 쏘아붙인 순간들이 그에게 독이 됐다는 평가다. 한 친한계 의원은 “의총장에서 의원들과 치고받는 모습을 보고 돌아선 의원들이 많았다. 그런 모습이 없었다면 원내대표도 친윤계에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대표가 되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부족한 콘텐츠” 정치적 소신 부족
한 대표만의 ‘정치적 소신의 부재’도 패착으로 지적된다. 한 대표가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나선 올해 초부터 한 대표가 내세운 구호는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과 ‘격차 해소’였다. 중수청을 내세우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의제를 선점한 것은 성과로 분석되지만, 그 외 분야에선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초선 비례 의원은 “한 대표는 ‘콘텐츠’가 없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당대회 때부터 ‘한동훈 캠프’에서 한 대표를 지원한 친한계 관계자는 “한 대표가 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고 생각했다”며 “(더불어)민주당과 선명히 각을 세울 수 있는 의제를 먼저 내세워야 했다”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한 대표는 소신을 지켜나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반헌법적인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한 대표는 친한계 의원 다수와 국회 본회의장을 찾아 계엄 해제에 앞장섰다. 하지만 이내 ‘한동훈·한덕수 공동 국정운영 체제’를 내세우며 ‘탄핵반대·조기퇴진’을 주장했고, 이후 윤 대통령이 하야를 수용할 뜻이 없다는 것이 전해지자 다시 ‘탄핵 찬성’ 입장으로 선회했다.
한 대표는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장에 ‘용비어천가’가 적힌 짙은 와인색 ‘한글 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났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라도 드러내듯, 그가 2022년 5월17일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날 맨 그 넥타이였다. 5분여의 짧은 입장 발표 후 즉각 기자회견장을 떠난 한 대표는 국회로 모인 50여명의 지지자를 향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떠났다.
하지만 정치력과 소신 무엇도 증명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정치 앞날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미 수차례 기회가 있었는데 한 대표가 증명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재명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졌는데, 대선후보로 나서는 것이 말이 되나”라며 회의감을 표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