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씨 빌려드립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여자친구 역할대행으로 ‘데이트 티켓’을 판매한다는 글이 잇달아 게재돼 관심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1박2일 데이트 티켓’이라는 제목의 글이 여러 개 게재됐다.
작성자와 지역은 각기 달랐지만 “1박 2일 여행, 골프(스크린), 동창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여자친구 콘셉트로 역할대행을 하고 있다”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문의 달라”고 적혀 있었다. 역할대행의 비용은 2만5000원이었다.
이 글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퍼지면서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1박2일 여행’을 내세우며 여자친구 대행을 해준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반면 만나서 어떤 일을 하던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전문 업체가 여자친구 역할대행, 아저씨 대여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다. 한 업체는 이용자 수가 6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서비스가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 기자는 직접 거래 플랫폼에 이 서비스를 올려놓고 반응을 살펴봤다.
처음에는 “신청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하고 걱정했지만 일주일간 하루 한 건 이상의 의뢰를 받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아저씨 대여 서비스’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아저씨’를 시간제로 고용해 도움을 받는 서비스다.
일본에서는 이 서비스를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누군가와 만나 의미 없는 수다를 떨고 싶지만 지인에겐 하기 힘든 내용인 경우 원하는 시간만큼 고용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오랜 사회 경험에서 오는 조언은 덤이다.
일주일간 받은 의뢰는 △진로 상담을 포함한 대화가 3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형광등 갈아 끼우기 △쇼핑 같이 가기 △저렴한 맛집 가기 △공항까지 마중 등이 각각 1건이었다.
이런 서비스는 무료가 아니다. 의뢰는 건당 최저시급인 9860원을 받고 진행했다.
먼저 대화의 경우 기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나 유학 경험을 묻는 내용, 단순히 만나서 수다떨기 등이 있었다.
자신을 대학 졸업반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미래 꿈이 기자인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다. 한 여대생은 유학과 관련한 질문에 앞서 일본과 호주에서 유학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기도 했다. 수다를 신청한 여성은 40대였는데, 단편 영화 제작을 준비하느라 바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를 나눴다.
맛집 찾아가기와 쇼핑 같이 하기도 있었다.
20대 여성은 어디서 찾았는지 9900원 맛집을 알아내 동행을 요구했다. 여성 혼자 가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곳이라는 게 이유였다.
30대 여성과의 휴대전화 쇼핑은 결국 가격대가 맞지 않아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서비스에 만족한다”면서 흔쾌히 시급을 지급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혼자인 경우 상담을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바가지를 씌운다는 얘길 들었다”면서 “친구가 있지만 평일에 같이 가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출국 배웅하기도 있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독일로 여행하는 20대를 서울역에서 만나 인천 공항까지 동행하며 짐을 들어주고 수속을 돕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여행과 취업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출국장을 나서며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들이 돈을 들여 아저씨를 빌린 가장 큰 이유는 재미로 보인다. ‘아저씨 대여 서비스’라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했고, 또래가 아닌 아저씨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이용자들은 입을 모았다.
대화 내용은 고민 상담 등 진중한 것들도 있었지만 “또래 친구와 크게 다른 느낌은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지루한 시간을 누군가와 목적 없이 보내는 것도 좋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도 있었다. 옆에서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작은 위안이 된 듯했다.
공항 배웅 역시 비슷했다. 한 여대생은 “이른 새벽이라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었고 서울에서 인천 공항까지 혼자 가기 심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이 서비스에 대해 말했는데 재밌겠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모르는 아저씨와 만난다’는 부분은 부담감이 큰 듯했다. 이용자들에게 명함을 보내주고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 안도하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는 기사를 찾아보거나 회사로 연락해 신분을 확인하기도 했다.
일본은 ‘무료’라는 개념이 없거나 희박한 편에 속한다. 무엇인가를 받을 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동네 아저씨’의 시간을 빌리더라도 그에 상응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일본에서 짧은 시간 쉽게 원하는 일을 해주는 아저씨 대여 서비스가 활성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다를 수 있다. 굳이 아저씨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친구나 선후배, 지인 등 대가 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자의 아저씨 대여 서비스가 이용된 건 지금껏 없었던 한국 최초 유료 서비스였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유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 모두 한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개인화가 심화한 나라다. 반면 한국은 정이 많은 나라”라면서 “당장 일본처럼 활성화는 어려울 거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한국사회도 개인주의가 확산하는 등 변화가 일부에서 감지된다”며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언젠가 상용화가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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