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역대급 한파를 맞고 있다. 고물가·고환율의 직격탄을 맞아 공사비가 치솟는 가운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확대 등 건설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정국이 경제 불확실성을 한껏 키우는 모양새다.
2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내년 민간 아파트의 분양 물량은 2000년 이후 역대 최처치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건설업계가 잔뜩 몸을 사리면서 내년 한 해는 최소한의 사업만 진행하려는 분위기가 강한 영향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주요 건설사들의 민간 아파트 분양 예정물량은 14만6130가구로 집계됐다. 일부 분양계획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물량을 합산해도 15만7000여가구 수준으로, 2000년 이후 분양 물량이 가장 적었던 2010년(17만2670가구)보다 훨씬 적다.
2∼3년 전 분양을 거쳐 내년 입주를 기다리는 물량도 예년보다는 훨씬 줄어들 전망이다. 부동산R114는 26만3330가구, 직방은 23만7582가구로 각각 올해보다 27.6%, 22% 줄어든 수치다.
분양 물량이 줄어들면서 서울과 수도권 일부 단지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아파트)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축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졌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의 아크로 리츠카운티는 71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3만4279명이 청약 신청에 나서면서 48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건설업계가 분양에 소극적인 이유는 경기 침체 영향이 크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22년 248조4000억원이었던 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206조7000억원으로 급감했고, 올해는 더 떨어져 2015조8000억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고금리와 대출 규제 여파로 부동산 경기는 좋지 않은데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이 계속되면서 사업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과 최근 우리나라의 계엄·탄핵정국으로 환율이나 경기 침체 상황 등이 단시간에 개선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자연스레 건설업계가 사업 규모를 줄이고 기존에 수주한 공사만 진행하면서 이른바 ‘버티기’로 일관하는 수순이 됐다.
부동산 PF 시장 경색도 건설업계가 손발을 묶는 요인이다. 어수선한 정국에서 금융사들이 PF 대출을 죄다 거부하면서 상당수 사업장이 금리가 높은 브릿지론으로 이자를 내며 본PF 전환을 못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은 물론이고, 수도권 상급지에서도 PF 대출이 막혀서 착공 직전 단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업장이 많다”며 “이자만 내면서 버티고 있지만 언제 그런 곳들이 무너지기 시작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정부도 주택 공급 절벽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역대 최고치인 25만2000가구를 내년 공공주택 공급 목표로 세워놓고, 착공과 인허가 물량을 확대해 시장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정부가 국정운영에 드라이브를 걸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부동산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주택 공급절벽 전망이 현실화할 경우 전월세 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전세난과 월세가격 상승이 한동안 이어지면 임대차 시장이 매매시장까지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금 시장의 전망대로라면 전월세 가격이 꾸준히 올라갈 수밖에 없고, 내년 하반기에는 집값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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