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독일 총리에 ‘멍청이’ ‘폭군’ 사퇴 요구도
영국 스타머 총리 “거짓말 퍼트리는 사람”
독일 숄츠 총리 “트롤에 먹이 주지 말아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선 넘는 정치 간섭에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그가 극우 정당을 공개 지지하는 것도 모자라 주요국 정상들을 향해 “무능한 멍청이”, “반민주 폭군” 등의 인신공격을 쏟아내자 정상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시비 거는 ‘트롤’(troll)에게 먹이지 주지 않겠다고 맞섰다.
머스크는 지난 2일 엑스(X·옛 트위터)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008∼2013년 왕립검찰청(CPS) 청장이었을 때 아동 성착취 사건을 은폐했다고 비난하면서 재조사와 스타머 총리 사퇴를 주장했다. 이 의혹은 영국의 극우 운동가 토미 로빈슨이 오랫동안 주장했다.
머스크는 영국의 극우 정당인 영국개혁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지난 3일에도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선거를 치러 노동당 정부를 몰아내야 한다는 게시물을 엑스에 공유했다.
스타머 총리는 이와 관련해 6일 기자회견에서 머스크를 겨냥해 “거짓말과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사람들은 피해자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의 치열함과 활발한 토론을 즐기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에 기반해야 한다”며 사건을 은폐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선을 넘었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회견 뒤 머스크는 또다시 엑스에 “스타머는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어린 소녀와 부모들의 호소를 반복적으로 무시했다”며 “스타머는 비열하다”고 인신공격했다.
머스크는 다음달 23일 총선을 치르는 독일 정치에도 참견했다.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을 공개 지지한 머스크는 지난달 20일 엑스에 “AfD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고 적었다. 지난달 28일엔 독일 한 주간지에도 같은 취지로 기고했고 오는 9일엔 이 정당의 총리 후보인 알리스 바이델 공동 대표와 라이브 대담도 잡았다.
머스크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향해선 “무능한 멍청이이며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반민주 폭군”이라고 불렀다.
이에 독일 정부 대변인은 6일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의 대다수는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며 품격 있다”며 “머스크의 거짓말이나 반쪽짜리 진실, 개인 의견이 8400만명이 사는 한 나라(독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숄츠 총리 역시 머스크의 정치 개입 논란에 대해 “새로운 일이 아니고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며 “트롤(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시비 거는 사람)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대응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관계를 위해 머스크의 유럽 정치 개입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 대사들과 신년회에서 머스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은 채 “1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SNS)의 소유주가 새로운 국제 반동 운동을 지원하고 독일을 포함한 선거에 직접 개입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도 이날 현지 공영방송 NRK에 “SNS에 대한 막대한 접근권과 대규모 경제적 자원을 가진 사람(머스크)이 다른 나라 내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민주주의와 동맹 국가간 이런 식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머스크가 노르웨이 정치에도 간섭하려 들면 정치권이 똘똘 뭉쳐 그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웨이도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EU는 일단은 신중한 입장이다. EU 집행위의 토마 레니에 기술주권 담당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머스크와 AfD 대표의 라이브 대담이 디지털서비스법(DSA) 위반이냐는 질문에 “SNS 플랫폼 소유자여도 생중계나 견해 표명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라고 답했다.
다만 2023년 12월 집행위가 엑스를 상대로 허위 정보·불법 콘텐츠 유통 확산 관련 DSA 위반 조사를 개시한 점을 거론하며 토크쇼에서 관련 위험이 식별되면 이 조사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DSA에 따라 이용자가 원하는 경우 토크쇼 등 특정 콘텐츠를 보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EU는 앞서 작년 8월 머스크가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와 온라인 생중계 대담을 앞두고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 명의로 DSA를 위반하지 말라는 경고서한을 보냈다가 곤욕을 치렀다. 당시 머스크가 보란 듯 ‘욕설 사진’을 엑스에 게재하며 응수한 데 이어 트럼프 캠프까지 나서서 대선 개입이라고 반발하자 EU는 하루 만에 ‘특정 이벤트’를 겨냥한건 아니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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