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 정치 개입 비칠까 우려
정권 확정 前 방위비 논의도 부담
트럼프2기 출범 후 장관급 방한 無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의 취임 후 첫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 일정에서 한국이 제외됐다. 전임 로이드 오스틴 전 장관에 이은 또 한 번의 ‘코리아 패싱’으로 비상계엄과 탄핵사태 여파가 한·미 외교관계로 확산하고 있다.
14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이달 하순 괌, 하와이, 일본, 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역내의 주요 미군 기지와 동맹국을 방문할 예정으로 당초 한국도 방문지에 포함됐으나 검토 끝에 취소됐다. 방한이 성사됐다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장관급 인사가 한국을 찾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헤그세스 장관이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동맹국이자 북핵 위협의 1차 방어 대상인 한국을 첫 인도태평양 순방지에서 제외한 것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탄핵 국면을 감안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한국이 극심한 국론 분열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핵심 각료의 방한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는 그림으로 비칠 수 있다는 판단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로이드 오스틴 전 장관도 재임 중 마지막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포함했다가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자 방문을 취소한 바 있다.
불과 4개월여 만에 또다시 미 국방장관의 ‘코리아 패싱’이 발생하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는 계엄 및 탄핵 국면 여파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정상외교를 펼치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핵심적인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헤그세스 장관이 방한할 경우 미측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함정 건조 및 보수·수리·정비(MRO) 분야 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컸는데,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논의가 미뤄졌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측은 헤그세스 장관이 한국을 방문할 경우 미군 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는 것 외에 남북 분단의 최전선인 비무장지대(DMZ)를 찾고, 조선 현장을 방문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국방예산 증액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헤그세스 장관 방한 무산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 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차기 리더십이 확정되기 전 방위비 관련 논의가 시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국방장관의 대면은 5월30일∼6월1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계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번 방문 무산에 미국 국방부는 “오늘 우리가 발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문 계획은 없지만 우리의 동맹에 대한 철통같은 공약은 여전히 분명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어 “한·미 연합 ‘자유의 방패’ 연습이 현재 진행 중인데, 그것은 지역 평화와 안보의 중심축인 한·미동맹의 역할을 강화한다”고 동맹이 여전히 굳건함을 강조한 뒤 “우리는 동맹 한국과 함께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즉각 전투에 돌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의 대비 태세를 지속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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