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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고택으로 서둘러 온 봄 맞으러 가볼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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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18 16:13:22 수정 : 2025-03-18 16: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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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경관 잘 살린 남원 고택 몽심재 봄 기운 완연/연인들 즐겨찾는 ‘폐역’ 서도역엔 낭만 가득/남원추어탕·다슬기탕 등 먹거리도 풍성

 

몽심재 사랑채.

아담한 마당을 차지하고 앉은 커다란 목련나무. 가지마다 달린 커다란 꽃망울이 터지면 순백의 아름다움도 흐드러지겠지. 봄이로구나. 살랑살랑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얼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햇살. 아이처럼 재잘재잘 떠드는 새들. 세월의 흔적 묻어나는 잘 늙은 고택 몽심재(夢心齋)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꿈꾸듯, 서둘러 다가온 봄을 맞는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넉넉한 고택에 봄 오다

 

전북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고택 몽심재 솟을대문으로 들어서자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고 급경사 산자락에 물 흐르듯 지은 고택 구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탈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사랑채를 살포시 얹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려 했던 집 주인의 겸손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대문 옆에 나란히 놓은 방은 문간채. 허드렛일을 하는 아랫사람 생활공간이지만 특이하게 정자처럼 생긴 꽤 넓은 누마루가 연결돼 있다. 이런 구조는 다른 양반 고택에서 찾기 힘들다. 더구나 그 앞에 놓인 바위는 정원석 치고는 아주 크다. 맞은편 사랑채에 올라 툇마루에 앉으니 바위에 가려 누마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인들이 주인의 눈길을 신경 쓰지 않고 편히 쉬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구조다.

 

몽심재 사랑채.

몽심재는 ‘꿈을 꾸는 마음의 집’이란 뜻. 주인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하인들도 이곳에선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을 것 같다. 마당 한편엔 작은 연못도 조성해 운치가 넘친다. 목련의 꽃망울이 커질 대로 커진 걸 보니 곧 단아한 하얀 꽃을 활짝 피울 것 같다. 사랑채 뒤로 더 높은 자리에 안채가 놓였다. 양쪽으로 지붕을 펼쳤는데 자세히 보면 서쪽 지붕이 훨씬 길다. 서쪽 마당은 요리하는 공간으로 지붕을 넓게 펼쳐 강렬한 한낮의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서쪽 마당엔 우물까지 파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배려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정취를 자아내는 몽심재는 원형이 잘 보존돼 조선시대 호남 지역 양반가의 전형적 주거 양식을 파악하는 귀중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죽산박씨 충헌공파 종가 삼강문.

몽심재는 송암 박문수의 14대 후손 연당 박동식(1753~1830)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문수는 고려 말 충신으로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삼로(三老)’라 불린 지조와 충신의 상징.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이에 반대해 두문동에 은신하며 세상과 연을 끊은 고려 말 충신 72현 중 한 명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가족들을 호곡리로 내려 보냈고 이후 후손들은 이곳을 지켰다. 몽심재는 현재 원불교 소유이지만 바로 옆에 죽산박씨 충헌공파 종가가 자리한다. 대문 한가운데 현판에는 ‘삼강문(三綱門)’이라 적혔다. 충신, 효자, 열녀가 모두 배출된 가문이란 뜻이다.

 

서도역 메타세쿼이아 길.

◆기차는 떠나도 연인은 찾아오네

 

몽심재에서 차로 30분 거리 서도역에도 고즈넉한 낭만이 가득하다. 역사 오른쪽에 둘레가 어른 몸통 두 배나 되는 벚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서서 여행자를 반긴다. 너무 늙어버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쁜 벚꽃 아직도 피워내니 매년 4월 초쯤 서도역은 핑크빛 낭만으로 물든다. 역사 안쪽 철길 너머에도 벚나무 고목들이 즐비하다. 역사 중앙 나무의자가 연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 둘이 앉아 마주 보는 모습을 철길과 함께 담으면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수채화를 얻는다. 연인들이 손잡고 철길 따라 걷는다. 양옆으로 늘어선 근육질 메타세쿼이아는 아직 앙상한 가지 그대로다. 하지만 봄 지나 여름 올 때쯤 잎이 무성해져 터널을 이루면 세상에 둘도 없는 낭만적 풍경을 선사한다. 1932년 기차가 운행을 시작한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 기차역이 인근으로 옮겨지면서 폐역이 됐고 지금은 영상촬영지로 쓰인다. 2018년 방영된 인기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8회에서 구동매(유연석)가 철길에 앉아 한성으로 가려는 고애신(김태리)을 기다리던 장면을 서도역에서 촬영했다.

 

서도역.

 

혼불문학관.

낡은 간판에 담긴 서도역 한자를 자세히 보니 방향을 뜻하는 ‘서(西)’가 아니라 ‘글 서(書)’자다. 특이하다. 역 이름 때문일까. 유명한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1947∼1998년)가 나고 자란 곳이 서도역이 있는 사매면 노봉마을이다. 소설 속 주인공 청암부인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그려진다. 노봉마을에 2004년 문을 연 혼불문학관에선 작가가 17년 동안 집필한 혼불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우리 역사상 가장 암울하고 불행했던 일제강점기에 몰락한 남원 양반가문 종가를 지키는 며느리 3대와 잡초 같은 삶을 이어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빼곡하게 그렸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등을 미니어처 작품으로 구현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작가의 육필 원고 등 다양한 자료도 만난다.

 

광한루원 영주각.

남원에 왔으니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살아 숨 쉬는 광한루원을 빼놓을 수 없다. 요천로 광한루원으로 들어서자 정자 다리를 연못에 띄워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수중누각 완월정이 우리나라 고전소설의 백미, 춘향전의 세계로 이끈다. 470년 수령 팽나무와 440년 수령 느티나무를 지나면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산을 봉래·방장·영주 3개 섬으로 꾸민 영주각을 만난다. 간밤에 비가 온 덕분에 더 깨끗하고 파란 하늘과 울창한 나무, 고풍스러운 영주각이 연못에 데칼코마니로 담기는 풍경이 매혹적이다.

 

광한루원 오작교.
승사교 야경.

광한루는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으로 꼽힌다. 1419년에 처음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고 1626년 복원됐다. 지난해부터 출입이 허용된 광한루에 오르자 연못 쪽으로 커다랗게 걸린 현판의 글자 ‘계관(桂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달나라를 보는 것처럼 광한루원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오작교는 1582년에 만든 것으로, 처음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리에 아치 모양 구멍 4개를 만들어 연못의 물이 오가도록 설계한 건축미가 빼어나다.

 

남원추어탕.

 

◆미식으로 즐기는 남원의 봄

 

봄은 겨울을 버틴 다양한 식재료로 입맛을 돋우는 계절이다. 남원에 왔으니 ‘남원 추어탕’을 빼놓을 수 없다. 동헌길 황토식당으로 들어서자 구수한 향이 겨우내 잠자던 미각세포를 깨운다. 토종 미꾸라지와 지리산에서 말린 시래기를 가득 넣고 진하게 우려낸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전국에 ‘남원 추어탕’ 간판을 단 음식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이곳 추어탕이 유명한 이유가 있다. 미꾸라지가 지리산 맑은 물이 흐르는 계단식 논에서 건강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남원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 넣고 된장, 들깻가루를 추가해 육수를 만든 뒤 아삭한 시래기를 듬뿍 담아 팔팔 끓여낸다. 남원 도심을 가로지르는 요천변에는 커다란 미꾸라지 캐릭터를 세워 놓은 추어탕 거리가 조성돼 맛집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슬기탕.

다슬기탕도 남원이 자랑하는 술꾼들의 ‘소울푸드’. 우리나라 내륙에선 오래전부터 간 해독성분이 탁월한 다슬기를 해장음식으로 즐겨 먹었다. 지역에 따라 올갱이(충북), 골부리(안동), 고디(대구), 대사리(전남) 등으로 부른다. 조리방법도 다양하다. 소금간에 부추만 넣고 끓이거나 달걀물을 입혀 된장국을 끓이기도 한다. 남원식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다슬기를 맑게 끓여 낸다. 남원시 금동 다슬기 전문식당 맑은뜰로 들어서자 주인장 대학생 딸이 예사롭지 않는 손놀림으로 핀을 이용해 다슬기를 순식간에 쏙쏙 뽑아낸다. 일일이 직접 수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믿음이 간다. 모든 메뉴가 죄다 다슬기 요리다. 다슬기 수제비, 다슬기 해장국에서 다슬기 전, 다슬기 닭백숙, 다슬기 오리전골도 있다. 섬진강에서 갓 채취한 싱싱한 국산 다슬기만 사용해 무를 넣고 끓인 다슬기 맑은탕과 된장을 풀고 아욱을 넣어 구수한 맛을 더한 다슬기 해장국 두 종류가 있어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해장국 한숟가락 입으로 밀어넣자 쌉쌀한 다슬기와 구수한 아욱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입안을 향긋한 남원의 봄으로 가득 채운다.


남원=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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