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93년 주요정책등 150건 선정 실태조사
‘국가기록을 방치하는 나라.’ 중요한 공공기록이 국가의 무관심과 일부 특권층의 조직적 폐기 등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역사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이다. 기록과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기준도 불명확한 탓이다. 그러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에 세계일보는 정부의 기록 작성 및 보관, 폐기에 이르는 전과정을 정밀추적해 시리즈(9회)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국가 기록 관리에 큰 구멍이 나 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취임사(197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문’(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쌀 개방 대국민 사과문(93년) 등 통치사료 상당수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또 청와대 앞길 및 인왕산 개방과 아시아나 항공기 해남 추락사고(〃), 법관 200명이 대법원 전면개편 서명운동을 벌인 사법파동(88년) 등 정책·사건 기록문서도 남아 있지 않다.
세계일보가 1950년부터 1993년까지 주요 역사·정책·사건과 대통령 통치 관련기록 150건을 선정, 국가기록원(옛 정부기록보존소)을 통해 보존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6건(70%)은 기안과 결재, 집행문서(사건보고서 포함)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06건 중 70건은 아예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고, 36건은 국무회의록에 짧게 언급되거나 국무회의 안건 목록 또는 관계법령철 등에 제목만 남아 있었다.
역사 기록인 경우 ‘6·29 선언문’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신설(80년) 등 표본 35개 중 12개는 기록 자체가 없었다.
정책 기록은 45건 중 ▲서울평화상 제정(89년) ▲연좌제 폐지(80년) ▲모스크바올림픽 불참(〃) 등 18건의 흔적이 없었다.
사건 기록은 국가정보원, 검찰·경찰청에서 이관하지 않은 것이 대다수였다. 이런 탓에 40개 표본 중 기록이 없는 것이 26개에 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76년) ▲김대중 전 대통령 피랍사건(73년) ▲정인숙양 피살사건(70년) 등이 꼽혔다.
대통령 관련기록은 30건 중 14건이 없었다. ▲노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9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의 공동성명서(67년) 등도 없었다. 49년 정부 수립 직후 정부 처무 규정에 따라 대통령과 국무총리 재가문서는 영구기록으로 지정해 보관토록 규정했으나, 지켜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기록을 보존해 공개할 만한 역사적 정통성을 갖지 못했고, 문서 보존 인식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은 대통령 전화통화 기록과 이메일 내용까지 보존된다. 명지대 기록관리학과 김익한 교수는 “대통령들이 기록물을 사유화했고 정치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통치·정책 기록을 폐기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박병진·주춘렬·김형구·이우승기자/specials@segye.com
<150건 어떻게 선정했나>
세계일보 취재팀은 주요 사건 연감(年鑑)과 일지를 포함, 매년 언론사가 선정하는 10대 뉴스를 일일이 대조해 1950∼93년의 주요 정책과 대형 사건·사고 150건을 선정해 국가기록원에 보존 여부를 의뢰했다.
국가기록원의 직원 3명이 4일 동안 확인작업을 벌였다. 보존서류 목록에 해당 기록이 있는지를 검색했고 담당 부처가 그해 생산한 문서목록과 다시 대조하는 방식으로 확인했다. 취재팀은 대외관계나 외교문서는 국가정보원과 외교통상부 등에 보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들 기관을 상대로 별도의 확인작업을 거쳤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주요 사건 연감(年鑑)과 일지를 포함, 매년 언론사가 선정하는 10대 뉴스를 일일이 대조해 1950∼93년의 주요 정책과 대형 사건·사고 150건을 선정해 국가기록원에 보존 여부를 의뢰했다.
국가기록원의 직원 3명이 4일 동안 확인작업을 벌였다. 보존서류 목록에 해당 기록이 있는지를 검색했고 담당 부처가 그해 생산한 문서목록과 다시 대조하는 방식으로 확인했다. 취재팀은 대외관계나 외교문서는 국가정보원과 외교통상부 등에 보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들 기관을 상대로 별도의 확인작업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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