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관 전시는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라는 주제로 이용백(45) 작가의 작품으로 꾸며진다. 20세기의 한국은 다양한 상처가 온몸에 배어 있는 곳이다. 일제 식민 시절과 독립, 6·25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와 경제개발, 민주화 여정 등 세계 문명의 모순과 영광이 고스란히 체화된 공간이다. 그 결과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체제의 모순은 여전하다. 이용백 작가는 이 같은 현실을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라는 서사로 작품 속에 풀어내고 있다.
위장된 가면 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작품 ‘천사와 전사’. |
이용백의 또 다른 영상작업 ‘거울(Mirror)’은 거울 앞에 선 이에게 날아오는 총알 한 방으로 끝난다. ‘거울 앞에서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나는 허상인가 실재인가?’를 묻는 작품은 허상적 자아와 기존 가치관에 대한 성찰로 다가온다.
사진과 회화작업 ‘루어(Plastic Fish)’는 화려한 가짜에 현혹된 세상을 말하고 있다. “진짜 물고기가 생존을 위해 덥석 먹을 가짜 물고기, 살기 위해 먹은 그 가짜로 인해 죽을 진짜 물고기,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인간, 이 지독한 존재의 역설, 이것은 장자의 ‘호접몽’도 아니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도 아니다. 천형처럼 어깨에 내려앉은 모든 존재의 지독한 슬픔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껍데기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담은 작품 ‘피에타’. |
이용백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싱글 채널 비디오에서 설치, 음향, 키네틱, 심지어 로보틱스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실험해 왔다. 그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이 같은 기술적 실험 자체보다는 테크놀로지적 형식 속에 우리 시대의 특유한 정치·문화적 쟁점과 상상력을 담아 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관 출품작들은 비디오 작업뿐만 아니라 조각, 회화 등 매체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담은 신작들이다.
손에 익숙한 한 가지 양식을 고집하지 않고도 기존 작업과 통일성을 유지한 채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용백 작가의 큰 장점이다. 그의 신작들은 존재의 문제부터 사회,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그의 폭넓은 관심사를 매우 효과적으로 부각시켜주고 있다. 이용백은 위장된 천사, 깨진 거울, 분투하는 피에타를 통해 한국미술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1980년대 중후반 최정화,이불 등으로 대변되는 ‘신세대 미술론’과 궤를 같이한다. 이들의 스승 세대는 미니멀리스트들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했다. 한켠에선 ‘민중을 위한 예술’을 제창한 민중미술운동도 있었다. 이 둘 사이의 분열은 이용백에게 잘 수긍이 되지 않았다.
“예술가가 자신을 ‘천사’이자 동시에 ‘군인”으로 싸우도록 명명한 ‘위대한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나 한계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예술은 스스로를 깨고 편견을 부수은 일이다.”
이용백의 작업은 지금 이 시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깨뜨려 보고 있다. 논리가 아닌 시 같은 직설의 힘을 동원한다. 영화가 소설이라면 그림은 시다. 이용백은 이러한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체적 장점과 힘을 잘 끄집어 내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윤재갑씨는 “정치적 전위와 사회적 정의가 사라진 한국의 지난 20년 동안의 공허하고 무기력한 일상들을 한 눈에 꿰뚫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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