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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리안의 위선·고정관념을 부수는 것”

입력 : 2011-05-30 16:50:46 수정 : 2011-05-30 16: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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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개막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단독 작가 이용백씨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 내에 위치한 비엔날레관에서 6월 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열린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브라질의 상파울루비엔날레,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와 더불어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로 꼽히는 미술행사다. 국가관 중심으로 운영돼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번 한국관 전시는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라는 주제로 이용백(45) 작가의 작품으로 꾸며진다. 20세기의 한국은 다양한 상처가 온몸에 배어 있는 곳이다. 일제 식민 시절과 독립, 6·25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와 경제개발, 민주화 여정 등 세계 문명의 모순과 영광이 고스란히 체화된 공간이다. 그 결과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체제의 모순은 여전하다. 이용백 작가는 이 같은 현실을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라는 서사로 작품 속에 풀어내고 있다.

위장된 가면 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작품 ‘천사와 전사’.
이용백의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 ‘천사와 전사(Angel Soldier)’는 천사와 전사라는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우리 시대를 은유하고 있다. “군복은 위장을 위해 야전 환경을 모방하는데 온 세상이 꽃(평화)이라면 군복도 꽃이되겠구나 생각했다. 꽃무늬를 입은 군인들이 활보하는 퍼포먼스를 촬영했다. 꽃그림에 대한 비아냥도 뒤틀고 싶었다.” 무엇인가 위장된 사회적 시스템과 고정관념에 대한 흔들기다.

이용백의 또 다른 영상작업 ‘거울(Mirror)’은 거울 앞에 선 이에게 날아오는 총알 한 방으로 끝난다. ‘거울 앞에서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나는 허상인가 실재인가?’를 묻는 작품은 허상적 자아와 기존 가치관에 대한 성찰로 다가온다.

사진과 회화작업 ‘루어(Plastic Fish)’는 화려한 가짜에 현혹된 세상을 말하고 있다. “진짜 물고기가 생존을 위해 덥석 먹을 가짜 물고기, 살기 위해 먹은 그 가짜로 인해 죽을 진짜 물고기,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인간, 이 지독한 존재의 역설, 이것은 장자의 ‘호접몽’도 아니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도 아니다. 천형처럼 어깨에 내려앉은 모든 존재의 지독한 슬픔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껍데기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담은 작품 ‘피에타’.
조각 작품 ‘피에타(Pieta·자비를 베푸소서)’ 시리즈는 ‘피에타-자기증오’ ‘ 피에타-자기죽음’ 이라는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졌다.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한 양식이다. 전통 조각에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거풋집이 성모 마리아 역이고 그 속에서 나온 알맹이가 예수 역이다. ‘증오’에서는 이 둘이 K1 격투기 선수처럼 처참하게 싸우고, ‘죽음’에서는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다. 존재의 모순과 종교의 위선, 문명의 어두운 야만 등이 녹아 있는 작업이다. “세상의 헛것(껍데기)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담았다.” 

이용백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싱글 채널 비디오에서 설치, 음향, 키네틱, 심지어 로보틱스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실험해 왔다. 그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이 같은 기술적 실험 자체보다는 테크놀로지적 형식 속에 우리 시대의 특유한 정치·문화적 쟁점과 상상력을 담아 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관 출품작들은 비디오 작업뿐만 아니라 조각, 회화 등 매체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담은 신작들이다.

손에 익숙한 한 가지 양식을 고집하지 않고도 기존 작업과 통일성을 유지한 채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용백 작가의 큰 장점이다. 그의 신작들은 존재의 문제부터 사회,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그의 폭넓은 관심사를 매우 효과적으로 부각시켜주고 있다. 이용백은 위장된 천사, 깨진 거울, 분투하는 피에타를 통해 한국미술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1980년대 중후반 최정화,이불 등으로 대변되는 ‘신세대 미술론’과 궤를 같이한다. 이들의 스승 세대는 미니멀리스트들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했다. 한켠에선 ‘민중을 위한 예술’을 제창한 민중미술운동도 있었다. 이 둘 사이의 분열은 이용백에게 잘 수긍이 되지 않았다.

“예술가가 자신을 ‘천사’이자 동시에 ‘군인”으로 싸우도록 명명한 ‘위대한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나 한계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예술은 스스로를 깨고 편견을 부수은 일이다.”

이용백의 작업은 지금 이 시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깨뜨려 보고 있다. 논리가 아닌 시 같은 직설의 힘을 동원한다. 영화가 소설이라면 그림은 시다. 이용백은 이러한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체적 장점과 힘을 잘 끄집어 내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윤재갑씨는 “정치적 전위와 사회적 정의가 사라진 한국의 지난 20년 동안의 공허하고 무기력한 일상들을 한 눈에 꿰뚫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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