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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서] 세상을 위협하는 불의에 분노하고 참여하라

입력 : 2011-07-08 19:36:45 수정 : 2011-07-08 19: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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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스테판 에셀·돌베개

100세를 바라보는 한 프랑스 노인이 호소한다. ‘분노하라.’ 흔히 웃으면 복이 온다거나 화를 다스리는 법을 알수록 도량이 크다고 존경받는다. 그런데 이 심술맞은 노인네는 미간에 못난 주름 잡히라고 젊은이들에게 분노를 부추기는 심보 사나운 소리를 하고 있다.

저자 스테판 에셀은 레지스탕스로 나치에 맞서 싸우며 청춘을 보냈다. 그는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즐길 법한 요즘 젊은이에게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분노하라고 외친다. 조국 프랑스가 나치에 짓밟혔던 그의 청춘과 오늘날의 청춘은 천지 차이만큼 다르건만, 대체 무엇에 분노하라는 것인가. 저자가 93세 고령의 나이로 저서 ‘분노하라’에 담은 메시지는 짧다. 여전히 세상을 위협하는 불의에 분노하고 참여하라는 것. 그것은 정당한 분노이며 우리 모두는 ‘투사’가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짧은 메시지가 유독 나에게는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은 나를 성찰로 이끌고 격려로 다독인다. 대학시절, 나는 내 또래 청춘들이 손에 돌이라도 쥐고 독재와 맞서 싸울 때 나는 응원자로 가끔 그들을 도왔을 뿐이었다. 나는 투사는 아니었다. ‘분노하라’를 유독 내 손에 멀리 떼어놓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젊은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노쇠한 외침을 이끌어 낸 것은 불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불의를 보고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오늘날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다. 저자는 전에 없이 이기적이고 거대하고 오만방자해진 금권, 극빈층과 부유층,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 등을 세상을 위협하는 불의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불의에 대한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고 단언하고 있다.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우리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고령의 노전사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분노하는 불의를 우리는 너무 별일 없이 지나치고 있지 않은가. 현실을 보면 분노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고 분노할 마음조차 억압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렇게 놓아버리면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정의는 어디에 자리할 것인가.

정말 우리는 어쩔 수 없는가. 아니다, 분노하면 된다. 혹자는 “어딜 가도 정치인을 욕하고 재벌을 비판하고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몹시 분노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한 참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노가 아니다. 그냥 고통스럽게 인내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 에셀은 프랑스의 가치와 원칙으로 모든 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 재계와 금융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포함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립의 권고,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을 제시한다. 프랑스의 ‘정당한 분노’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그것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저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하게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불의를 바로잡아 정의를 세우는 개혁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야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갈 수 있다. 이것을 위협하는 불의에는 분노하자.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분노하고 저항할 권리가 있고 충분히 정당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회정의를 위한 분노의 긍정성을 거듭 강조한다.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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