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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는 중세 문화의 지적 혁명”

입력 : 2011-10-07 21:11:29 수정 : 2011-10-07 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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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학자들, 현대 언어학·음운학 인문과학적으로 터득
세계 문화사의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돌베개/1만5000원
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 지음/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돌베개/1만5000원


우리글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우수한 문자인 것에 뿌듯해하지만, 혹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세종 이전에 우리 민족이 무슨 말을 하고 살았을지 궁금하지는 않았는가.

도쿄외국어대학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아키타(秋田)의 일본국제교양대학교의 객원교수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58)는 한글의 탄생을 ‘문화의 혁명’이라면서 중세기의 ‘지’(知)의 판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고 강조한다.

한글의 창제는 한민족의 글을 만들었다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어 중세 문화사적으로는 지적 혁명이며 대단한 충격이었다고 저자는 풀이한다. 그는 원래 미술을 전공한 미학도였으나 한글의 매력에 끌려 서른 살에 도쿄외대에 다시 입학해 한글을 공부했다.


노마 히데키
저자는 ‘언어란 무엇이고 문자란 무엇인가’라는 보편 타당한 질문을 통해 한글을 인문학적으로 통찰한다. 2010년도 일본의 유력 일간 마이니치신문이 주는 ‘제22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받는 등 대단한 호평을 받은 이 책은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과 꼼꼼함에서 비롯된 탄탄한 논리와 객관적인 서술이 돋보이는 저서로 평가된다.

우선 저자는 한글은 세계문자사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대해 얼마나 무서울 만큼의 이해력과 분석력, 창조력을 통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냈는지 밝히고 있다. 한자만으로 글을 써왔던 15세기 이전의 한반도와 일본에서, 글을 조금이라도 잘 읽고 쓰기 위해 궁리해 낸 온갖 방법들도 소개한다.

저자는 한글의 연원부터 추적한다. 15세기 당시 한자문화권의 반대편인 서방에서 동쪽으로 ‘알파벳로드’가 흘러들었고, 세종대왕도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랍문자, 로마자, 몽골문자 등으로 가지를 치며 이어지는 ‘알파벳로드’에서 한글은 어떠한 영향을 받아 창조되었을까. 아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에서 태어난 한글이 세계 문자사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서 있었는지 넓고 보편적인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박진감 있는 글솜씨가 돋보이는 한 대목이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귓가에 들려오는 자연의 말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 이들을 각각 ‘자모’로서 형상화해 설계해 내는 과정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정립된 갖가지 현대 언어학의 개념 이해에 이미 도달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확인한다.”

세종과 당시 학자들이 현대 언어학, 음운학을 이미 500여년 전에 인문과학적으로 터득했기에 한글 창제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흔히 이야기하는 한글의 ‘과학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15세기 현재’까지 아무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최신 문자 ‘훈민정음’의 탄생 과정이 경이롭게 펼쳐졌다.”

세종이 최만리의 유명한 상소가 담고 있는 진정한 의도를 풀어내고 이에 대한 반론을 서술한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다. 최만리가 한자로 된 조선 지식 사회가 붕괴될 것이라고 극력 반대하자, 세종은 그를 파직시켰다가 곧바로 복직시키기도 했다. 저자가 특히 한글과 일본어, 중국식 한자, 프랑스어, 몽골 키릴문자 등을 적절히 비교하면서 한글의 특징을 조목조목 풀이한 것은 국내 학자 누구도 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였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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