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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붕괴…"10대 훈계하려면 목숨 걸어야"

입력 : 2012-11-16 10:00:05 수정 : 2012-11-16 1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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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사는 A(49·여)씨는 최근 집을 내놓았다. 두 달 전 집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고등학생들을 꾸짖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이후 신원을 알 수 없는 학생들이 집앞을 지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문을 발로 걷어차는 일이 잦아졌다. A씨는 “경찰에 신고를 하려 해도 혹시나 아이들이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이사를 가기로 했다”면서 “못 본 척했어야 하는데 정말 후회가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청소년 탈선을 훈계하던 어른이 되레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일 충남 아산에서는 50대 남성이 중학생들을 괴롭히던 고교 중퇴생 2명을 나무라다가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경기 수원에서는 30대 남성이 길거리에 침을 뱉고 시끄럽게 떠들던 고교생들을 훈계했다가 5살짜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을 맞고 쓰러진 후 숨졌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담배 피우는 아이 훈육하다 경찰서 가게 됐습니다’란 글이 올라와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전북 전주의 학원 강사인 30대 남성이 아파트 비상통로에서 흡연하던 중학생들에게 “담배연기가 들어온다”며 나무랐다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학생들을 밀쳤는데 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부모들과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10대를 훈계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자영업을 하는 김모(47)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예의없게 굴면 꾸짖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꺼려진다”면서 “요즘 아이들은 즉흥적이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교 2년생 이모(17)군은 “전혀 모르는 어른이 훈계를 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어른들한테 반항심을 갖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전국 중·고교생 1859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가치관을 조사한 결과 ‘이웃 어른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중학생의 61.1%(645명), 고교생의 70.2%(576명)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전통적 가족문화 해체와 인성교육 붕괴에서 원인을 찾았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신뢰나 존경을 보이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재기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는 “청소년들의 의식 속에 연령에 기반한 서열관계는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어른들을 나이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닌, 자신을 훈계할 위치에 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엄소용 세브란스 전문의(임상심리)는 “요즘 청소년은 학업적 발달에 비해 정서적·사회적 발달이 뒤처진다”면서 “스트레스에 견디는 인내력이 약해진 반면 상대에 대한 공감과 존중 능력도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위기위식을 갖고 인성 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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