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김주현)는 15일 공갈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46)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이를 낳아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겠다고 한 점, 50억원이 낙태의 대가로 보기에는 너무 큰 금액인 점, 돈을 받은 후 인출해 숨겨둘 준비까지 한 점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돈을 갈취하기 위해 협박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면서 “(50억원은) B씨가 혼외자 부양과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재산에 관한 분쟁을 우려해 합의금을 임의로 준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04년 한 등산모임에서 만난 유부남 B(61)씨와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B씨는 자신과 회사 소유의 토지 가격만 공시지가로 1000억원이 넘는 자산가였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만나면서 한 달에 1~2차례 성관계를 갖고, A씨는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500만원을 받았다.
부인이 있는 B씨는 가임기를 철저히 피하면서 성관계를 가졌다. 아이를 가져 재산분할 등 골치 아픈 일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의 마음은 달랐다. A씨는 B씨 몰래 가임기에 맞춰 임신을 시도했고 2008년 11월 임신했다.
아이를 해칠 것이 두려웠던 A씨는 B씨에게 “답답해서 프랑스에 다녀온다”며 연락을 끊었다.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석 달 만인 2009년 2월 B씨에게 임신사실을 알렸다. 당황한 B씨는 낙태를 요구했지만 B씨는 “100억원을 주지 않으면 애를 낳겠다”며 버텼다. B씨는 10억원, 20억원, 20억원에 20억원짜리 빌라, 40억원 등 조건을 제시하며 낙태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애를 낳아 B씨 회사 앞에서 시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5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합의금이 통장에 입금된 것을 확인한 A씨는 5일 뒤 낙태 수술을 받았다.
A씨가 낙태한 것을 확인하자 B씨는 억울해졌다. B씨는 “아이를 낳아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는 등 협박을 했다”며 A씨를 고소했다. 검찰은 A씨를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공갈죄로 기소했다.
이은정 기자 ehofkd1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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