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달은 원만과 구족(具足· 다 갖추어져 있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찼다가 기우는 것이 달이다. 생명의 성장, 퇴조, 죽음의 이치라 할 수 있다. 달은 죽음에 들 뿐 재생과 회생을 거듭하는 존재로 인간 영생 염원의 상징체이기도 하다. 그 밝음으로 해서 정화하는 힘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달의 서정성은 예술로 꽃을 피웠다.
백남준의 대표작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TV가 없던 시절 지구의 유일한 위성인 달을 바라보면서 이미지를 투영하고 이야기를 상상하던 모습을 TV 시청에 빗댄 것이다. 이를 오마주하는 ‘달의 변주곡’전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6월2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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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권의 ‘서울 뉴타운풍경, 월곡동의 사라지는 빛’. 재개발 이전 옹기종기 푸근한 빛을 발하던 산동네 풍경이 아련한 달빛 풍경으로 다가온다. |
비디오 설치, 가상의 시간성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사진 등을 통해 예술적 체험인 명상과 사유, 시적인 순간을 만나게 해준다. 개념 보다도 즉각적 감성에 호소하는 전시다.
오랜 세월 동안 달의 서정은 시가 됐고 노래와 그림이 됐다. 우리 전통화의 명암법엔 ‘달빛 명암법’이 존재했을 정도다. 대조와 구별이 아닌 조화와 융합의 명암법이다. 대조법조차도 상보적이다. 이는 넓은 여백의 개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은은한 암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잠재적 심층까지 넌지시 시사하게 된다. 절제된 여운이라 할 수 있다.
신윤복의 ‘월하 풍경’이 전형적인 예다. 김환기(1913∼1974) 화백도 ‘달빛 명암법’에서 예외가 아니다. 달과 학· 달과 항아리· 달과 피리 부는 사람 등 전통적 모티프에서, 서양화 캔버스와 물감으로 우리 전통화를 그렸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다.
특히 정지된 사진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다비드 클라르바우트의 작품은 사진과 영상의 접점 찾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재미가 있다.
일본 미디어 아티스트 구와쿠보 료타는 100엔 숍에서 산 싸구려 물건(바구니, 연필, 삼각자, 백열 등)을 바닥에 늘어놓은 뒤 그 사이로 레일을 깔고 LED 조명을 단 작은 기차가 달리도록 했다. 미니기차가 움직이면 벽에 역동적인 그림자들이 펼쳐진다. 마치 달빛 아래 그림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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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쿠보 료타의 ‘빛(Light), 오브제(Object), 공간(Space), 시간(Time)’. 레일을 따라 빛이 이동하면서 만드는 흑백 도시의 풍경은 태초부터 있었던 밤의 환영, 은밀한 달의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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