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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악마적 폭력에… 극단 내몰린 인간의 추락

입력 : 2014-05-16 20:29:25 수정 : 2014-05-16 20: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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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생존 몸부림 포로들
나치의 폭력에 서슴없이 동참


수용소의 실상 해부
누구에게 어디까지
책임 물을 것인가
생존자인 저자가
인간의 위기 제기
프리모 레비 지음/이소영 옮김/돌베개/1만3000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프리모 레비 지음/이소영 옮김/돌베개/1만3000원

책은 묻는다. “우리의…도덕적 뼈대는 얼마나 강한가? 만약 불가피하게 몰릴 때, 동시에 유혹이 우리 마음을 부추길 때 우리들 각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답한다. “인간들이 한 줌의 작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몰려든다. 이것은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질문은 냉정하고, 대답은 암울하다. 아우슈비츠 경험에서 비롯된 자문자답은 극단의 환경에 놓인 인간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밑바닥이다. 유대인 출신 이탈리아 작가인 저자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토대로 여러 작품을 썼고, 책은 죽기 한 해 전 쓴 것이다.

저자가 전하는 경험은 끔찍하다. 아우슈비츠라는 공간에 가해진 악마적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이에 대처한 포로들의 자세 또한 그랬다. 수용소로 내몰린 이들은 불행을 함께 하는 동료들의 연대감을 기대했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바라던 동맹은 없었다. “수용소의 현실에서 맞닥뜨린 최초의 충격은 예견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누군가의 공격이었는데, 관리자 포로라는 새롭고 이상한 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신참’ 포로들에게 최초의 폭력을 가한 관리자 포로들은 특권층이었다. 그들은 포로 전체 인구에서는 소수였지만 생존자들 가운데에서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권력을 향한 근시안적 욕망, 비겁,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된 특권은 통제받지 않은 폭력을 휘두르는 근거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에 대해 섣불리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극단적 환경에서 비롯된 행위에 대한 “심판을 맡길 만한 인간의 법정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특권층 포로를 만들어낸 나치의 의도는 최악이다. 학살된 포로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화장터 운영을 맡은 유대인 중심의 ‘특수부대’를 구성함으로써 나치는 “희생자 자신에게 작업의 일부를, 그것도 가장 추악한 부분을 대리하게” 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덜려 했다. 죄의 짐을 떠넘김으로써, 희생자들에게 죄가 없다는 안도감마저 남아 있지 않도록 한 것이다.

나치의 폭력성은 ‘쓸데없는 폭력’이기도 했다. 히틀러 체제는 포로를 대할 때 단순히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괴로움, 최대한의 정신적·도덕적 고통을 짜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죽음을 앞둔 90세 노파를 굳이 열차에 태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거나, 식량과 요강도 없는 열차에서 몇 주씩 여행하게 하는 등의 예를 통해 나치의 악마성이 드러난다.

아우슈비츠의 특권층 포로를 이야기하는 데서 흔히 피해자로만 규정되는 포로들에게도 저자가 가차없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포로들 사이에 있었던 수동적이고 폭력적인 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한 생존자의 기억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왜곡 문제, 해방의 순간 그들이 경험했던 수치심과 죄책감의 근원을 깊숙이 파고든다.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폭력은 유례없는 악마적인 것이었다. 포로들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렸고,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포로들 중 일부는 나치의 폭력에 동참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책은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여기서 나치에 한정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위기가 이야기된다. 수용소 세계는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다. 그 속에서 끔찍한 폭력의 실상과 원인을 파헤치고, 누구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태도는 죄에 가담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단죄하거나 용서하는 일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체제 자체의 범죄성을 이해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갈라낼 수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억압기구의 범죄에 의해 가담자나 공범자가 되어버리는 메커니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저자는 증언문학을 대표하는 ‘이것이 인간인가’로 국내에도 알려진 작가다. 책은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한 지 38년 만에 쓴 것이고, 저자가 수용소에서 풀려난 지 40년 만에 나왔다. 책이 나오고 1년 후 저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삶의 핵심 주제였던 아우슈비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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