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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후마니타스에세이] 역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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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27 21:27:02 수정 : 2014-06-27 21: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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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엔 인간에 대한 성찰 담겨
역사를 거울삼아 몸가짐 바르게 해야
“이러한 것이 천도(天道)라고 한다면 그 천도는 과연 옳은가? 그른가?”

박완규 기획·온라인담당 부국장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 백이열전 편에서 하늘이 무심하게도 백이와 숙제를 죽게 만들었다고 탄식하며 한 말이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죽은 의인(義人)이다. 악인은 천수를 누리고 의인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는 현실의 모순을 말한 것이다. ‘사성(史聖)’으로 불리는 사마천은 이러한 모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말해 인간에게 천도가 무엇인지를 제시하려 했다.

‘사기’는 상고시대 황제 때부터 한 무제 때까지 중국과 주변 민족의 역사를 담은 통사체 역사서다. 본기(本紀)와 열전(列傳) 중심으로 이뤄지는 기전체의 효시로, 중국뿐 아니라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역사 편찬의 전범(典範)이 됐다. 비로소 역사가 연대기 차원에서 벗어난 것이다. 사료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괴이한 전설이나 신화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믿을 만한 자료만 받아들여 인간 중심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칭송을 듣는다.

‘사기’에는 영웅에서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온갖 군상이 출연해 이상 추구나 애욕에 따르는 인간적 갈등을 딛고 이룬 성취를 들려준다. 그런 까닭에 후대의 문학과 예술에서 창작의 샘 역할을 했다. 그리고 각 편 말미에 “태사공은 말한다”로 시작하는 사마천의 논평이 들어 있다. 이를 통해 후세에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면서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기’ 이후로 사람들, 특히 사회 지도층이 역사를 의식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훗날 사가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하고, 언행을 조심하게 된 것이다.

사마천 자신도 ‘사기’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확신했기에 궁형(宮刑)의 굴욕을 견디고 아버지의 유언인 사서 편찬 과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저술이 완성돼 명산에 보관되고 각지의 선비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치욕도 충분히 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기’에서는 공자의 ‘춘추’ 등 책 편찬 사례들을 꼽으면서 “이들은 모두 마음에 깊이 맺힌 바가 있으나 그 뜻을 직접 표현할 수 없었기에 지나간 사실을 빌려 미래에 그 뜻을 전했던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인사 문제가 정국을 흔들고 있다. 총리 후보자들이 이런저런 문제로 낙마한 데 이어 일부 장관 후보자는 각종 의혹이 불거져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끄러울 전망이다. 이들이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 후대의 평가를 염두에 두기나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말과 행동이 온라인에서 순식간에 전파되고 저장되는 시대 아닌가. 몸가짐을 한시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한 사람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선조는 달랐다. 조선왕조 500여년간 사관들은 ‘실록’이라는 이름의 역사를 써 내려갔고, 왕조차 그 기록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했다. 역사학자 김기봉은 “인간은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역사에 구속을 받는 존재”라며 “이 같은 역사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늘 우리 삶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사마천은 ‘사기’ 항우본기 편에서 맨손으로 출발해 3년 만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곧바로 몰락한 항우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 “항우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워 과거를 교훈으로 삼지 않았다. … 끝까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다’라며 핑계를 댔으니 어찌 잘못이 아니랴.” 누구나 가슴에 새겨둘 만한 말이다. 하늘의 뜻은 핑계거리가 아니다. 역사를 거울삼아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

박완규 기획·온라인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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