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개인 명의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어느 세무사 사무장 을에게 세무 기장과 신고 대리를 맡겼다. 사무실에는 세무사가 있었지만 실무는 을이 했다. 갑은 4년 전 거래 업체로부터 받은 수억원짜리 어음이 부도가 나서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회사가 어려워지자 을에게 이를 세금에 반영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을은 엉뚱하게도 필요경비를 부풀려 신고해 세금을 줄여버렸다. 그 다음 연도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세금을 줄였다.
고성춘 조세전문 변호사 |
세법지식이 있었다면 을과 같이 황당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을의 이 같은 신고행위를 세무사가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부도어음은 부도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대손이 확정되므로 그 시점이 속하는 과세연도에 어음금액을 대손금으로 필요경비 산입하면 얼마든지 세금을 적법하게 줄일 수 있었다. 의아스러운 것은 부도어음 금액에 포함된 부가가치세는 적법하게 신청해 환급받아 놓고 필요경비로 산입해 소득금액을 줄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환급받은 부가가치세액을 다음해에 잘못 환급받았다면서 가산세까지 부담해가며 다시 돌려줬다. 필요경비로 처리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돼도 세무신고를 맡긴 사업자는 알 수가 없다. 신고 내용을 설명해주지도 않지만 들어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세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황당한 행위를 한 을은 피고인의 지시로 필요경비를 부풀렸다고 자신의 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했다. 결국 갑은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잘못 신고한 을은 고발을 면했다. 갑은 그동안 과세처분 불복은 세무사에게, 기소단계에선 검찰 출신 변호사를, 소송단계에선 다른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러나 결과는 안 좋았다. 이것이 조세형사사건의 현실이다.
고성춘 조세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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