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올해 유명 사립고에 진학한 강해령(가명·17)군은 매일 아침 기숙사 침대에서 눈을 뜨는 게 너무 괴로웠다. 중학교 시절 전교 10위권에 들었던 강군은 경쟁이 치열한 사립고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신감을 잃었다. 매일 아침 6시30분에 기상해 밤 11시까지 공부해야 하는 생활에 염증을 느낀 강군은 밤마다 침대에 누워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 방법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한국자살예방센터가 최근 3개월간 진행한 청소년자살 관련 상담 중 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례 35건을 분석한 결과, 10대 학생들은 학교폭력과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이 처한 괴로운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해를 선택한 학생들도 많았다.
청소년 자살은 10대가 겪고 있는 고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자살은 수년째 10대의 사망원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10만명당 9.2명꼴로 10∼19세 청소년 308명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보다 더 암울한 통계는 도전 정신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할 한국 청소년들 대다수가 평소 자살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수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7월 실시한 ‘2014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3명 중 1명꼴로 자살을 생각하며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학생들은 10대의 충동 성향 때문에 성인이라면 술 한 잔 먹고 털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일반 성인의 경우 자살을 유발하는 감정은 절망감이다. 현재의 부정적 상황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비관적 인식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다. 그러나 10대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문제와 직면했을 때 생기는 극단적 공포나 분노 등에 이끌려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인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주일 전 PC방에 다닌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혼이 났던 그 학생은 이날도 몰래 PC방에서 놀다가 발각된 뒤 두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같은 해 1월 대구에서도 온라인 게임을 오래한다고 꾸중을 들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충동 자살인 셈이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10대는 마치 럭비공처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극단적 선택을 한다”며 “평소 자살 생각을 한다는 건 격정적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에 자살이 들어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래 집단의 동조 현상도 10대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친구들과 자살 얘기를 하다가 동반 자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1월에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던 여학생 5명이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고민을 나누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술을 나눠 마시고 자살을 하려 했지만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일부가 마음을 바꿔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이들 학생을 상담했던 김도연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장은 “학생들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집단적 우울증에 빠져 자살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사용하려 한 사례”라면서 “10대들이 스마트폰 메신저나 SNS를 통해 나누는 얘기는 교사나 부모 등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어 선제적 예방이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살 위험군 학생들에게는 부모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그런데도 ‘2014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답변한 학생 중 절반 가까이는 학교 성적 때문에 부모와 갈등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가정에서 위안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가족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청소년도 많았다.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가정과 부모가 오히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게 한국 가정의 비극이다. 김 협회장은 “자녀들이 자살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면 윽박지르고 무시하는 부모들이 있다”며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자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자녀를 살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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