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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상처를 내 아픔처럼 응시하는 사회 되길”

입력 : 2015-08-13 20:39:41 수정 : 2015-08-13 21: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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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 작가상 수상 구병모 “전혀 예상을 못해서 뜻밖이었습니다. 데뷔작이 다른 문인들과 달랐기 때문에 그동안 저라는 작가는 비평의 대상이기보다는 (문단에서) 논외의 존재나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상이 지금과는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격려가 될 것 같습니다.”

개편된 ‘오늘의 작가상’ 첫 수상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문학과지성사)의 작가 구병모(39)는 전화기 너머에서 차분하게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는 2008년 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으로 등단해 장편 4권, 소설집 2권을 상재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여 눈 밝은 이들에겐 주목의 대상이었지만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가 베스트셀러로 대중에 각인되면서 청소년문학 작가 이미지가 여전히 더 강한 편이었다.

새로 개편된 ‘오늘의작가상’ 첫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구병모. 청소년문학 작가로 데뷔한 그는 “최근 발표되는 작품들을 보면 더 이상 장르 구분은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면서 “독자 입장에서 보면 잘된 소설과 잘 안 된 소설로만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음사에서 주관해온 이 상은 39회째인 올 수상작부터 공모제를 폐지하고 자사의 책을 뛰어넘어 모든 문학출판사에서 출간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 결과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책을 민음사에서 뽑아 홍보해주는 셈이다. 왜소해진 한국문학판에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보자는 것이 주최 측의 의도였다. 이를 위해 추천인단 50명도 기존 문학평론가나 소설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서점 관계자, 언론인, 독자들로까지 폭을 넓혔다. 1차 추천작 22편은 다시 인터넷 알라딘 서점에서 독자투표를 실시해 20일간 1만 5903회 투표가 진행됐고 추천위원 선정 결과를 합산해 10편의 작품을 2차 추천작으로 선정, 강유정(문학평론가) 박대일(편집자·파란미디어 대표) 박성원(소설가) 정미경(소설가) 정홍수(문학평론가) 등 본심위원 5명이 수상작을 결정했다.

단편 8편을 수록한 구병모의 수상작은 호흡이 가쁜 유장한 만연체로 ‘일상이라는 재난’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알르레드 히치콕의 영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창(裏窓)’은 아무도 다른 이들의 삶에 간섭하기 싫어함으로써 부조리가 조장되는 세태를 풍자한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우연히 목격한 다른 집의 아동폭력에 간섭한 오지랖 넓은 ‘오지라퍼’는 끝내 아이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자괴심에 빠지지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되는 여자는 나를 조소할 따름이다. ‘관통(貫通)’은 현실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가난한 아이 엄마의 환상과 고통을 다룬 작품이고, ‘식우(蝕雨)’는 말 그대로 내리는 비가 강철까지 녹여내는 끔찍한 재난이 전면에 등장한다.

구병모는 “엄청나게 큰 재난도 있고 일상에서 뾰족하게 솟아나는 파편 같은 재난이 있는가 하면 작은 상처들이 모여 엄청난 상처가 되는 재난도 있다”면서 “그동안 써 온 소설들에서 지속적으로 일상의 재난을 다루어 왔는데 궁극적으로 그 재난을 막을 방법을 제시하진 못했지만 피하지 않고 바라보기는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봄 남편 직장을 따라 경남 진주로 이사한 그는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책 제목은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나만은 재난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긴 것”이라고 부연했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을 두고 “가열찬 오븐”(정미경) 이거나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여는 새로운 상상력”(박대일)이라고 평가했다.

최종 후보작에 오른 10편은 수상작을 포함해 ‘국경시장’(김성중),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불로의 인형’(장용민), ‘잠실동 사람들’(정아은), ‘차남들의 세계사’(이기호),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천명관), ‘투명인간’(성석제),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등이다.

1977년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해 본격 문학의 대중화 기반을 만들었고 이번에 다시 범 문단 차원 문학상으로 개방한 박맹호(81) 민음사 회장은 “최근 잇단 문학 출판계 파문은 오히려 한국문학과 출판을 일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면서 “그동안 어떤 의미에서 문학이 파손된 측면이 있는데 이 상이 새롭게 출발하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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