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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런던 집값 서울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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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2-04 21:08:52 수정 : 2015-12-04 2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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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끌어올린 집값, 파도치면 와르르 붕괴
충격 최소화 묘수 필요
국민연금기금 활용을
현관부터 좁고 낡았다. 큼지막한 여행용 캐리어가 겨우 통과했다. 런던 시내 빅토리아역 근처의 한인 민박집은 허름하고 누추했다. 집값은 깜짝 놀랄 반전이었다. 몇 년 전 30억원을 들여 샀는데 지금은 40억원이란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30대 부부는 “이모가 투자했다”면서 은근히 자랑했다. 그렇게 좁고 낡은 집이 40억원이라고? 과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현지 교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정도 간다”고 했다. 중동 부호를 비롯해 세계의 부자들이 런던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집값이 무섭게 뛰고 있다는 것이다. 정영택 한국은행 런던사무소장은 “런던의 집값이 연간 두 자릿수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취재 중 만난 런던시민은 “지금 런던과 그 외의 영국은 서로 다른 나라”라고 말했다.

어느 나라든 집값 급등은 무주택 서민들에게 반갑잖은 소식이다. 집값이 뛸수록 그들의 주거비 부담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비가 흩뿌리는 11월26일 저녁 런던 지하철 워털루역 입구에서 뿌려진 무가지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는 렌트비를 걱정하는 서민의 시름을 전하고 있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스물네 살 회사원 로티 그랜트는 원베드룸 아파트(flat) 보증금으로 현재 1만5000파운드(약 2700만원)밖에 모으지 못한 처지이지만 내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는 “런던을 벗어나 집을 마련하려 한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집을 사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치솟는 집값은 런던의 젊은 세대에게도 또 다른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류순열 선임기자
익숙한 광경이다. 런던과 서울은 그런 점에서 닮았다. 자녀 교육문제로 2년 전 서울 강남의 30평대 아파트 전세를 7억6000만원에 얻어 입주한 Y씨는 최근 이사를 준비 중이다. 재계약 조건으로 월세 전환요청은 거절한 채 오직 “보증금 3억원을 더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30평대 아파트 전셋값이 10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결국 그는 이사를 결심하고 인근 50평대 아파트를 보증금 8억원, 월세 130만원에 임차 계약했다. Y씨는 억대 연봉을 받는 대형 금융사 영업부장이다. 그는 “아무리 강남이라지만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런던시민의 표현을 빌리면 서울은 그 외의 한국과 다른 나라, 서울 강남은 그외의 서울과 다른 도시가 되어버렸다.

현상은 같지만 원인엔 차이가 있다. 런던의 집값을 세계 부자들의 돈이 끌어올렸다면 서울의 집값은 가계빚이 끌어올렸다. 일반 가계의 부채총액은 9월 말 1166조원이며 이 중 주택담보대출이 587조원으로 절반을 웃돈다. 저금리와 주택금융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면서 “빚 내서 집 사라”고 압박한 정부 정책의 결과다. 부동산 경기를 중심으로 얼어붙은 내수에 불을 지펴보려는 것이었으나 그 효과는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저금리에 기대 빚으로 끌어올린 집값은 모래성과 같아서 파도가 치면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는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달 미 연준의 금리인상은 기정사실화했다. 어떤 형태로든 충격은 불가피하다. 주요 공직을 맡고 있는 경제학자 M씨는 “쇼크가 급격히 올지, 완만한 침체로 갈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집값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건 명확하다”고 말했다. 실제 치솟기만 하던 서울 강남의 집값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택 공급 과잉에 대한 걱정이 국토교통부 장관의 입에서,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를 통해 쏟아지고 있다. 올해 급증한 아파트 분양물량이 입주시기인 2017년 이후 대규모 미분양 사태와 입주 포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충격을 막을 묘수가 없을까. M씨는 “국민연금기금을 주택 임대시장에 투자하면 된다”고 했다. 주택시장과 서민주거 안정을 꾀하면서 국민연금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윈윈전략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인데, 그는 “4대강 밀어붙이듯이 의지를 갖고 하면 왜 못하겠냐”고 목청을 높였다. 국민연금기금은 지난 9월 500조원을 넘어섰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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