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 얼마나 될까 더 신경 쓰여
100세 시대 즐겁게 살려면
나이에 걸맞는 지혜가 필요
잘 살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은퇴 후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됐다. 모두 주변에서 은퇴한 분의 사례를 건넸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다양했다. 하던 일을 계속 활발하게 하는 분, 전시·강연·콘서트 등 문화 활동에 마니아가 된 분, 그림·도자기·도예를 배워 전시회까지 하는 분, 전원생활을 시작해 텃밭을 가꾸는 분, 열심히 운동과 여행에 몰입하는 분 등 모습이 다양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 꼭 드는 닮고 싶은 모습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흐지부지 다른 주제로 대화가 옮겨 갔다.
가끔 노인 문제가 시급하다거나 노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기사가 나오면 잠시 불안해지면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뭐가 필요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일을 미리 예상해 뭔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정경미 연세대 교수·임상심리학 |
또 한 권은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이 책에서 가완디는 죽음의 준비에 대해 직선적인 제안을 한다. 가완디는 노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생리적인 변화를 겪는 것인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생기는 현실적인 문제를 낱낱이 나열하고 있다. 특히 환자가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완화치료를 제공하는 ‘호스피스 케어’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는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삶의 마감법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가완디는 “평온해지고 삶을 잘 마감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수용이다”라고 설명한다. 가완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삶의 마지막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여러 사람의 행보를 소개하며, 그들의 용기와 추진력에 감탄하고 그들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결과물에 감사해한다. 나는 이 책을 덮고 처음으로 나와 내 가족이 살고픈 노인시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아직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가장 인간답게 삶을 마감하고 싶은 곳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돼 감사하다.
언제부터인지 나 자신이 몇 살이 됐는지보다 내 생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조금씩 신체 변화도 느끼고 있고, 주변에서는 약 봉지가 늘어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소위 ‘100세 시대’로 큰 병이 없다면 남은 시간이 꽤 될 것 같다. 오래 사는 것이 즐거우려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잘 살려면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더 든다. “나이에 알맞은 지혜를 갖지 못한 사람은 그 나이에 가지는 온갖 불행을 면치 못한다”고 한 사상가 볼테르의 명언이 떠오른다.
정경미 연세대 교수·임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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