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자마자 그는 세계지도부터 펼쳤다. 펜끝이 중국 동북부, 옛 만주땅에서 출발해 몽골, 카자흐스탄을 지나 터키와 우크라이나를 찍고 헝가리까지 이어졌다. 8000㎞에 걸친 광활한 영토다. 그가 연구하는 한민족 고대사의 현장이다. 그의 몸과 마음은 수시로 이 광활한 영토 곳곳을 누빈다. 거기에서 수천년 역사의 퍼즐 조각들을 모으고 맞춰가는 중이다. 서울 충정로 서대문타워 10층 그의 사무실엔 그 흔적들이 그득했다. 그의 현재 직함은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다. 법무법인 지평이 만든 연구소다.
-지금 고대사라니 왠지 한가한 느낌이다.
“고대사 연구는 현재의 문제다. 한가한 주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상황을 돌파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야 그 무기를 쓸 것 아닌가. 그러니 나도 한가할 수 없다. 사는 게 이렇게 바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지난 60년 우리는 폐허 속에서 일어났다. 세계 11번째 나라를 만들었다. 기적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가장 중요한 게 한민족 DNA다. 끈질긴 생존본능, 승부사·개척자 기질, 강한 집단에너지, 이 네 가지가 특징이다. 이런 한민족의 역동성이 어디에서 온 거냐. 바로 유라시아 기마민족의 DNA다. 수천년 전 엄청난 역사가 있었던 거다. 그런데 끊기고 사라졌다. 이 역사를 복원해 한민족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열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고대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의 작은 정치적 사회 정도로만 기억할 뿐이다. 김 전 위원장이 흥분된 목소리로 풀어놓는 고대사는 어렴풋한 통념을 뒤집는다. 고조선은 BC 24세기쯤 건국해 만주 일대까지 장악한 거대국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고대국가가 유라시아 기마군단의 원류라고 했다. 그는 특유의 입담으로 새롭고, 놀랍고,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예를 들어 12세기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3300만㎢의 땅을 정복한 칭기즈칸은 고구려의 후예다. 시조 주몽의 후손이며 발해(후고구려)를 세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19세손이다. 북방민족 사학자 전원철 박사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는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의 저자다. 오랑캐 정도로 기억하던 흉노, 선비, 돌궐, 여진도 한민족의 혈족이거나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BC 3세기 몽골고원을 통일한 흉노는 중국인에게 만리장성을 쌓게 할 만큼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흉노는 고조선의 속주로 우리에게서 분리된 동족”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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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를 펼쳐가며 한민족의 활동무대를 설명하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
“모르는 소리다. 고증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증거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ZDF TV가 흉노 후예인 훈족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신라 기마인물형 토기 형태가 훈족의 이동경로에서만 발견된다면서 훈족의 원래 고향이 한반도일 수 있다고 방송하기도 했다. 한국전 참전 때 터키군 여단장이 ‘한국과 우리는 혈맹국’이라고 했는데, 그들의 선조 돌궐이 고구려와 혈맹이었기에 한 말이다.”
그는 “고조선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며 “한민족 고대 역사는 최소한 고조선부터는 제대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조선이라는 동아시아 최강의 국가가 어떻게 형성됐고, 또 이어졌는지, 이제 그 역사가 한민족 성장 DNA를 설명해줄 차례”라는 것이다. 압축하면 그의 고대사 연구는 “기마민족 DNA를 살려 꽉 막힌 미래를 열자”는 것이다. 그는 “우리 무기가 뭐냐. 한민족 DNA다. 이거 갖고 다시 붙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펴낸 저서 ‘김석동의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 DNA’는 이 같은 고민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헬조선이라는 건 결국 형평의 문제다. 모든 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추가 형평인데 이게 깨진 것이다. 시장을 지키려면 균형을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우선 현재를 위한 것이 복지다. 복지의 기본 개념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비용이다. 또 미래엔 사람 팔자를 바꿀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게 바로 교육이다. 어떤 거지 같은 정부도 이 두 가지는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최소한의 장치인 복지 갖고 이상한 논쟁이나 하고 ‘개·돼지’ 같은 소리나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교육정책을 하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나.”
그의 ‘한민족 DNA 승부론’은 추상적 담론에 머물지 않는다. “지구촌 미래를 살리기 위해 공조와 협력이 필요한데 그 장을 이끌어내는 진원지를 한반도로 보고 있다”면서 “국제적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전쟁 없는 유럽’의 개념에 균열이 생기고, 동북아도 미·중의 긴장 구도로 전환되면서 파국을 막기 위해 국제적 공조와 협력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철의 실크로드는 이런 구상을 실현할 핵심 프로젝트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만주횡단철도(TMR), 몽골횡단철도(TMGR), 중국횡단철도(TCR), 4개 대륙 철도망과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그는 “이 길들은 수천년 전부터 한민족이 국가를 건설하고 활동하던 무대”라며 “철의 실크로드가 다시 한민족의 활동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의미심장하게 “세계가 깜짝 놀랄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심이 아주 많았지. 원래 사학과를 가려고 했다. 나의 존재, 우리 민족은 어디서 연원했는지 이게 굉장히 궁금했다. 사학에 인생을 걸어볼까 했는데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하셨다.”
-어쩌다 관료의 길을 택했나.
“내게 제일 안 맞는 게 공직이다. 보고하고 지시받고 이런 거 내 스타일 아니다. 좋았던 것은 판단의 근거가 공적 잣대라는 것, 또 원칙과 법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공직이 또 맞는다. 공공성과 원칙, 이 두 가지면 무서울 게 없지. 내가 젊을 때 한다면 하는, 결단의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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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2013년 초 공직에서 물러난 뒤 역사학자로 변신했다. 지금 그는 유라시아의 광활한 영토를 누비며 한민족 DNA의 뿌리를 찾는 중이다. 그의 포부는 “한민족의 정체를 찾아 이를 무기로 미래를 열겠다”는 것. 그는 “고대사 연구는 현재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고구려 수도, 국내성이 자리 잡았던 중국 지안(集安)에서 수집한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학자’ 김석동. 서상배 선임기자 |
-관료 시절 ‘장관급 과장’, ‘대책반장’ 등 별명이 많았다.
“기마병 체질로, 야전사령관만 했다. 유학도 못 가고 청와대 못 가보고 장관 된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외환위기 당시다. 1997년 1월 외화자금과장으로 부임해 6개월 동안 하루 두 시간씩 자며 일했다. 그땐 나라를 살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일이 다 끝나고 세 번 암수술 받았다.”
그렇게 큰 일을 겪고 나서 그는 공직을 그만두려다가 부인의 말에 맘을 바꿨다. “결정 잘 하셨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도 한번도 불평하신 적이 없다. 삼성물산 다니고 사업할 때는 불평, 불만이 입에 붙었는데…” 그는 “와이프의 말을 듣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고 회고했다.
-경제문제를 안 물어볼 수는 없다. 가계부채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가계부채를 걱정 안 하면 뭘 걱정하겠나. 칼이 줄에 매달려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는데. 이명박정부에서 건설업자들이 많이 설쳤다. 김석동 때문에 분양 안 돼 경기 죽는다고.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하겠다고 난리였다. 2011년 1월1일 금융위원장 부임하면서 첫 서별관회의에서 가계부채 문제 들고 갔다. 지금 심각하다고, 대책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윤증현 기재부 장관이 ‘관리 가능하다더니 위원장 바뀌더니 위기라니 어떻게 된 거냐’고 하더라. 그때 김중수 한은 총재도 ‘걱정된다’고 하니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DTI는 그가 차관보 시절 주도해서 만든 주택금융 규제다.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빌려주라”는 안전장치다.
-꿈을 실현하려면 다시 공직을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 일 없다. 확고하다. 나는 사학자니까. 학자라고 하면 남들이 웃겠다. 역사학도니까…. 지금 하는 일, 보람된 과제다. 전업으로 풀베팅할 거다. 그래야 현재가 극복된다. 이제 기존의 틀로는 안 된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 세계경제 침체는 1929년 대공황 때보다 훨씬 오래 갈 것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1953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90년 재정경제원 5·8부동산 특별대책반장 △1993년 재정경제원 금융실명제 대책반장 △1997년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 △2004 ~ 2005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2007 ~ 2008년 2월 재정경제부 1차관 △2008년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2011 ~ 2013년 3월 금융위원장△현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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