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골목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다.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슬픔과 기쁨이 묘하게 뒤얽힌 벅찬 떨림을 맛봤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누군가와 헤어져 돌아오는 골목길의 뼈아픈 외로움마저도,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골목길의 정서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사랑도 가난도 외로움도 모르던 시절, 나는 ‘가난한 사랑 노래’를 통해 그 모든 아픔을 한꺼번에 이해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 시를 통해 한꺼번에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느끼게 된 모든 기쁨과 행복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하는 일임을. 화려한 고층아파트나 대로변이 아닌 후미진 골목길에서 느끼는 삶의 추위마저도, 이제는 가슴 시린 노스탤지어(향수)의 대상이 돼 버렸다.
정여울 작가 |
한 동네에 사는 인연으로 만나 풋사랑을 키워가던 연인과 결혼에 골인하게 해준 것도 골목길의 힘이었으며, “아이들이 공을 차며 뛰놀고 시어머니께서 동네 어르신들과 담 그늘에서 담소하시던 길,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서 하루살이를 쫓으며 기다리던” 그곳도 골목길이었다.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라’는 딸의 부탁을 한사코 거절하고 “또 오마”하시며 지팡이를 짚고 휘청휘청 사라지신 부모님의 마지막 뒷모습도 골목길의 한 서린 추억이었으니. 도시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삭막한 빌딩숲 속에서도 사람들 웃음소리와 이웃의 곰살궂은 정이 아직은 남아있던, 고향을 잃은 모든 현대인의 마음속 오아시스가 아닐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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