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밤바다 위에서 다채로운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부산항대교와 다리 아래를 지나가는 배, 주위의 불빛이 이루는 야경은 어느 도시의 야경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부산 시내 풍경도 좋지만 영도 봉래산에서 보는 부산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
뜬금없이 애국가가 생각난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견디기 힘든 더위가 끝나지 않을 듯했는데 어느새 청명한 가을 하늘이 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여기에 짠 내가 스치듯 지나간다. 바다다. 얼마 전까지 더위를 식히려 풍덩 빠진 곳이지만 이젠 춥다. 대신 어느 계절보다 푸른 하늘이 파란 바다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때가 왔다. 마냥 바라만 봐도 좋은 때가 온 것이다. 해수욕장에서 보는 바다는 때가 안 맞다. 해안 절경과 어우러진 바다가 제격이다.
부산 영도(影島)는 부산의 방파제이자 그림자와 같은 곳이다. 부산항 앞에 있는 이 섬은 먼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병풍 역할을 한다. 부산항이 거센 파도로부터 자유로운 천혜의 양항이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영도의 역할이 컸다.
영도는 일제 강점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았다. 부산항 매립을 위해 토사를 퍼가거나, 주민들이 건너가 땔감을 마련하는 배후지 같은 역할을 한 곳이었다. 조선시대 땐 나라의 말을 키우던 곳으로 목도라 부르기도 했다. 그중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가 있어 이 말이 한번 뛰면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해 그림자가 끊어진 섬, 절영도(絶影島)란 이름을 얻었다가 후에 ‘절’ 자를 뗐다.
부산의 그림자섬 영도. 그림자이기에 그 어느 곳보다 부산의 제 모습을 가까이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거기에 바다 절경을 따라 걷는 길은 덤이다.
부산 영도(影島)는 부산의 방파제이자 그림자와 같은 곳이다. 부산항 앞에 있는 이 섬은 먼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병풍 역할을 한다. 영도 봉래산 정상 부근 불로초공원 전망대에서는 오륙도와 낙동강 하류, 거제도까지 볼 수 있다. 날이 좋을 때는 대마도도 보인다. |
영도가 왜 부산의 그림자인지 확인하려면 봉래산에 올라야 한다. 봉래산은 봉황이 날아든다는 산이다. 해발 395m로 높지 않다.
우선 봉래산 정상에 가기에 앞서 청학배수지에 들르자. 옛 해사고등학교 옆이다. 배수지 전망대에 오르면 부산 시내와 부산항, 부산항대교 등을 바다와 함께 조망할 수 있다.
부산의 황령산, 산복마을 등 잘 알려진 전망대에서는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이 펼쳐진다. 반면 영동 봉래산에서는 바다 쪽에서 부산시내를 바라볼 수 있다. 살아 있는 부산의 모습이다.
청학배수지 전망대에는 고구마를 짊어진 농부 동상이 서있다.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에 간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접하고 이를 국내로 들여왔다. 영도 청학동에서 파종해 조선에서도 고구마를 재배할 수 있게 돼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이곳의 풍경만 보고 돌아가면 안 된다. 이곳까지 왔으면 정상 부근에 조성된 불로초공원 전망대에 꼭 들러야 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다 보니 내비게이션으로도 검색이 잘 안 된다. 청학배수지 옆 오르막길을 가다 오른편에 청학마을자연생태학습장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그 방향으로 가야 차를 몰고 불로초공원으로 갈 수 있다.
불로초공원에 다다르면 전망대가 두 곳이 있다. 섬에 있는 산 정상 부근이다 보니 주변에 시야를 막는 것이 없다. 바다 쪽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오륙도가 선명하다. 날이 좋을 때는 대마도도 보인다. 다른 전망대에서는 멀리 낙동강 하류와 거제도까지 볼 수 있다. 부산시내와 이를 둘러싼 황령산, 장산 등이 이루는 풍경을 두 곳에서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영도의 숨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부산여행특공대 손민수 대표는 “영도에 사람이 살았던 기간은 짧지만, 피란 시절 만남의 장소이자 애환의 장소였던 영도 다리가 있는 곳”이라며 “온몸으로 파도와 거센 바람을 막아준 영도는 부산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숨은 비경과 사연이 많은 보물섬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불로초공원에서 20분 정도 산행을 하면 봉래산 정상이다. 할매바위가 서 있다. 이 할매바위는 영도에서 살던 주민이 외지로 나가면 망하게 한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섬이다 보니 사람이 귀해 외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온 얘기일 듯싶다.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부산 시내 풍경도 좋지만 봉래산, 특히 청학배수지에서 보는 부산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시커먼 밤바다 위에서 다채로운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부산항대교와 다리 아래를 지나가는 배의 모습은 어느 도시의 야경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부산시내와 바다를 봤으면 영도의 모습을 봐야 한다. 영도의 기암절벽과 바다가 이루는 절경을 보려면 절영산책로 따라 걸으면 된다. 체력이 된다면 걸어도 좋지만 3㎞가 넘는다. 두 시간 넘게 걸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거리다. 차로 이동해 중간중간 내려 전망대를 둘러보는 것이 나을 듯싶다. 몸이 힘들면 여행은 재미가 없어진다.
영도 절영산책로를 걷다 만나는 중리해녀촌은 일제 때 제주에서 올라온 해녀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검은 햇빛가림막 아래서 나이 든 해녀들이 물질해 잡아 온 해산물을 바로 손질해 내놓는다. |
흰여울마을에서 시작하는 이 산책로는 태종대까지 연결된다. 대마도전망대와 절영전망대, 태평양전망대 등이 있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의 풍경은 각기 매력이 있다. 가는 길에 중리해녀촌이 나온다. 일제 때 제주에서 올라온 해녀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검은 햇빛가림막 아래서 나이 든 해녀들이 물질해 잡아 온 해산물을 바로 손질해 그 자리에서 내놓는다.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제주 사투리와 함께.
영도(부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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