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 거대한 반전의 시작
귀의 문화·음악이 인류의 희망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울림 최근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은 세계의 문학인은 물론 예술계와 지성계의 가장 빅 뉴스였다. 1960년대부터 월남전을 반대한 반전·저항가수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등으로 불리며 세계의 주목과 인기를 받은 그의 수상소식은 잠시 충격을 주었지만 이제 ‘받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이다. 문학의 폭을 넓혔다느니, 노벨문학상의 새로운 시대읽기 등으로 해석되는 그의 수상은 필자에게는 단순히 문학예술상의 어떤 변화라기보다 인류문명의 거대한 반전을 예감하게 하는 의미로 다가왔다. 말하자면 ‘눈의 시대’에서 ‘귀의 시대’로의 문명의 원시반본과 같은 것 말이다.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 사라 다니우스는 의외의 소식에 접한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그의 레퍼토리는 애팔래치아의 포크송, 남부의 컨트리음악, 프랑스의 모더니즘 시인 랭보까지 아우릅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밥 딜런이 ‘포크 록’으로 미국문화의 우상이 된 지는 오래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음악 역사상 밥 딜런보다 큰 거목은 없었다. 오늘의 음악인은 모두 밥 딜런의 신세를 졌다”고 격찬했다. 스티브 잡스도 애플 컴퓨터 공개 당시 그의 노랫말 “지금의 패자가 나중에 승자가 되리니. 세상은 바뀌고 있으니까”(1984년)를 인용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도 “아무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2008년)라는 그의 말을 인용할 정도이다. 유럽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문화적으로는 에머슨의 철학과 휘트먼의 시를 양대 기둥으로 삼아 미국 문화의 탑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와 월리엄 포크너(1949년 노벨상)와 헤밍웨이(1954년 노벨상)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제 밥 딜런이라는 노래하는 시인이 끼어들게 된 셈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
개인적으로는 밥 딜런의 출세작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이라는 노래와 그의 말 가운데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 두려워 말라”를 좋아한다. 필자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세계에 근본적인 대답이 없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blowing’의 번역을 ‘앎-대답’이라는 영어문법으로 말했지만 정확한 사실은 ‘바람은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blow’는 우리말의 ‘불다’ 혹은 ‘바람’과 어근이 같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어느 지점에선가 영어와 한글의 공통어근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의 시를 ‘귀를 위한 시’라고 평했다. 그런데 필자는 ‘귀의 철학’으로서 ‘소리의 철학(Phonology)’(2012년)을 발표한 바 있다. 인류문명의 원시반본을 밥 딜런과 필자는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셈이다. 인류의 문명은 고대의 소리글자(음성언어, 말글) 위주에서 문자(문자언어, 글말)의 발명과 글쓰기와 기록을 통해 오늘날 첨단과학에 이르고 있다. 과학은 물론 성경조차도 문자와 기록의 집대성인 ‘책의 위력’이다. 이제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는 ‘폰(phone)의 시대’ 소리의 시대이다. ‘귀의 문화’와 음악이 인류의 희망인지 모른다.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있다.
인류는 너무 오랫동안, 요컨대 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한 추축시대인 서기전 5세기를 전후로 하더라도 약 2500년 동안 기록과 책에 의존해 문명을 축적했다. 그런데 그 바벨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제 언어의 장벽, 문명의 장벽, 종교의 장벽에 갇혀서 서로를 믿지 않고 적대적으로 살다가 어느 날 핵전쟁에 의해 멸망할지도 모른다. 그때 폐허가 된 지구 위에 바람은 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 두려워 말라’는 밥 딜런의 말은 미지의 세계를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류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위로의 말인지도 모른다. 밥 딜런은 서양의 ‘노래하는 도인(道人)’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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