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타워] 암표의 사회학

관련이슈 세계타워

입력 : 2016-10-25 23:35:43 수정 : 2016-10-25 23:35:4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돈과 불공정 판치는 세상… 분노의 민심 아는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한창이지만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야구팬이라면 한두 번쯤은 관객이 몰리는 주말경기나 빅게임을 보기 위해 암표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든 적이 있을 것이다. 암표는 양면성을 지닌다.

‘시간=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너댓 시간 혹은 그 이상을 하염없이 줄을 선다는 건 분명 낭비다. 과거 소련이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절 국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연간 400억시간을 줄서기로 허비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김기동 산업부장
암표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효율성 면에는 최고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줄서기로 인한 고객의 불편은 곧바로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긴 시간 발품을 팔아 줄을 서느니 차라리 안 사고, 안 보고,안 입는다는 식이다. 번호표나 전화·인터넷예약, 예매문화가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돈으로 새치기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인 암표는 굳건히 존재한다. 오히려 줄을 서주는 아르바이트까지 판을 치고 있다. 이유는 돈이다. 암표를 사는 쪽은 “내 돈으로 내가 산다는데···”라는 것이고, 암표상은 “돈 없으면 관두라”는 식이다.

‘신의 수저’ ‘금수저’ ‘헬조선’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우리 사회에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반증이다. 돈과 출생신분이 운명을 결정하는 신분사회. 조선시대에만 존재했을 것 같지만 오늘날에도 엄연히 살아 있다는 얘기다.

‘99%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온 나라를 들쑤셨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그는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라고 막말을 했다.

이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한 SNS에 올라온 글이 또 한번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에 휩싸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2014년 SNS에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다. 정씨는 자신의 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라고 썼다. “돈도 실력이야. 남의 욕하기 바쁘니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젊은 혈기에서 나온 순간적인 감정일지 몰라도,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뇌물·스폰서 검사비리와 줄잇는 기업오너의 갑질 등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의 글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핵심적인 문제는 부의 편중과 기회의 불공정이 구조화되고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희망까지 포기한 ‘6포세대’ 청년층에다 치열한 경쟁과 빚에 짓눌리고 고용불안과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중장년층, 노년층까지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세 가지 덕목으로 무기·식량·백성의 신뢰를 꼽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고 했다. 정부는 곱씹어봐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 빈부격차의 벽을 체감하는 민초들의 쓰라린 울부짖음과 냉소를,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라는 원성을. 국민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라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기동 산업부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