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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한파가 밀려온다. 겨울을 나기 위해 손길 발길들이 분주해질 즈음이다. 북극 온도가 올라가 올겨울에는 극강의 한파가 올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온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월동 준비 품목이 김장이었다. 요즘이야 핵가족이 보편화돼서 아예 김장 같은 건 건너뛰고 조금씩 사다 먹고 한다고 해도 소량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는 배추김치 총각김치에다 동치미까지 담그는 큰 집안 행사였다. 김장과 더불어 쌍으로 떠오르는 품목은 역시 연탄이다. 행여 연탄 떨어진 줄 몰랐다가 강추위 냉방에 떨까봐 미리미리 쟁여두는 월동 품목이었다.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낱장으로 사다 쓸 수밖에 없었던 그 연탄은 가스 중독을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거느렸다. 연탄가스에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었지만 운 좋게 자다가 깨어 간신히 바깥으로 기어 나왔을 때 흔히 찾던 구급약도 바로 김장독에 묻어둔 동치미였다. 김장과 연탄이 물리적인 월동 품목이었다면, 신춘문예는 많은 ‘문학청년’들에게 정신적인 난로였고 희망이었고 등대였다. 젠더와 노소를 떠나서 문학에 목을 매는 문학애호가들을 통칭하여 문학청년이라고 불렀거니와 그냥 ‘문청’으로 더 잘 통하는 말이다.

신춘문예는 알다시피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문예행사다. 일제강점기에 발표 지면이 극도로 적었을 때 신문이 문예지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고, 매년 새해 아침에 신인을 발굴해 내보내는 행사로 시작됐다가 지금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지면들이 늘어났고 등단 경로도 다양해져서 신춘문예는 그만 없애는 게 좋다는 무용론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까지 폐지한 매체는 보이지 않는다. 응모자들도 더 늘어나는 추세다. 매년 새해 아침을 시와 소설로 여는 세계 유일의 나라인 것이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디지털시대의 감성 환경에서 오히려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전통’이 돼 버린 셈이다.

기온이 내려가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추워질수록 문청들의 가슴은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김장과 연탄으로, 털장갑과 목도리만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 간절한 기원을 담은 소설과 시에 몰두하는 이들이 정신적 가난과 추위를 극복하는 궁극의 유일한 해법은 저 좁은 신춘문예의 관문을 통과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장르별로 단 한 명만이 영광을 안는 몰인정한 제도인 것을. 이들도 쓰는 행위 그 자체로 기실 위로와 보답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는다. 가슴에 화덕을 품은 모든 이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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