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중국까지 가세할 수도
대북 제재 국제공조 깨지면
핵보유국 지위 오를 빌미 줄 수도 미국과 러시아 간의 핵능력 강화 논쟁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핵무기 확장 논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핵무기 부대의 전투력’을 강조하는 국방문제 연설에서 촉발됐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핵무기 경쟁을 하자는 것”이라며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맞대응하면서 미·러가 핵 강대국 간의 경쟁체제로 재돌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과 푸틴 대통령의 동시적 핵전력 강화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하고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동참한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정책과 전면 배치되고, 양국이 핵무기 수와 크기를 줄이기 위해 들인 수십년에 걸친 노력을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군비경쟁의 망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러 간의 핵 경쟁 우려로 논란이 번지자 트럼프 당선인 측은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은 핵확산 위협에 대한 언급으로, 핵무기가 테러리스트들과 불안정한 불량정권에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라며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조윤영 중앙대 교수·국제 정치학 |
핵 강대국 간의 핵 군비경쟁은 결국 북핵 위기 발생 이후 대북 제재와 압박의 제동을 위해 20여 년 만에 최초로 형성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국제공조 분위기를 해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북 제재에 미온적이어서 ‘제재의 구멍’이라고 비난받는 중국과의 협조체제를 가까스로 마련한 상황이지만, 미·중의 핵무기경쟁이 시작되면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즉 중국 책임론에 입각한 단기적 안보리 제재 이행에는 중국이 따를 것으로 보이나, 북한정권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는 추가적이고 독자적인 대북 제재는 더욱더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 포기 명분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 개발이 핵무기를 통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이 강대국 간의 핵 경쟁 상황을 이용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부상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귀순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에 따르면 “북한은 ‘2017년 핵개발 완성’을 목표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으며 10조달러를 준다고 해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터져 나온 미·러 강대국 간의 핵능력 강화 논쟁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당선인의 좌충우돌형 외교정책의 향방을 예의주시하면서 강대국 간의 핵 경쟁 가능성과 같은 우리 국익에 배치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을 적극 표명할 필요가 있다.
조윤영 중앙대 교수·국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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