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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詩 흐르는 ‘책바’·책 약방… 고된 삶을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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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6 19:37:34 수정 : 2017-02-26 19: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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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랑방’으로 변신한 동네 서점 “책이라고 하는 ‘지(知)의 결정체’를 피에 비유한다면 대형서점은 정맥과 동맥, 동네서점은 모세혈관이다.”

‘동네서점’의 저자 다구치 미키토는 동네서점의 남다른 역할을 강조했다. 책과 지식, 사람이 모여 있는 동네서점은 단순한 공간적 의미만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동네서점이 최근 ‘독서인구의 감소’와 ‘대형·인터넷서점’ 등의 파고에 맞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의 ‘다시서점’에서 이용객이 책을 고르고 있다.
남정탁 기자
◆동네서점, ‘문화사랑방’으로 재탄생


예로부터 동네마다 한두 곳씩 위치해 있던 동네서점은 지역의 ‘사랑방’이자 ‘지식창고’였다. 집객효과가 높은 서점은 문화와 소통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최근 침체를 겪은 동네서점들은 변화를 통해 지역의 ‘문화사랑방’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한옥마을로 각광받는 서울 종로구 계동길에 위치한 ‘베란다 북스’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전문서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노준구씨가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아트북과 그래픽노블 등 시각예술 전문서적을 접할 수 있다. 그림책은 통상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여겨지지만, 이곳에서는 어른도 그림책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한옥마을답게 서점 내부는 나무로 된 대들보와 서까래가 두드러져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점 한쪽에는 아트프린트를 비롯해 판화와 엽서 등의 상품도 판매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의 ‘다시서점’은 낮에는 서점으로, 밤에는 바(Bar)로 운영되는 곳이다. 다시서점이라는 이름은 가수 윤선애의 노래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 동시에 ‘시가 많다’(多詩)는 뜻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서점에 비치된 책은 대부분 시집이다. 최근에는 백석과 윤동주, 김소월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시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시집을 판매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사적인 서점’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서점’을 표방한다. 이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은 손님이 아닌 주인이다. 주인이 손님에게 적합한 책을 처방해주는 방식이다. 서점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서점 주인과 약 1시간에 걸친 대화를 통해 필요한 책을 처방받는다. 주인이 무슨 책을 정했는지는 1주일 후 택배로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의 ‘고양이책방 슈뢰딩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양이를 위한 전문서점이다. 세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인이 운영하는 이곳은 고양이와 관련한 국내 단행본, 해외 화보집, 중고서적, 독립출판물 등 500여권을 취급한다. 서점에서는 주인이나 다른 손님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관련 서적을 추천받을 수 있다. 이곳은 수익의 일부를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등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헌책방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공씨책방’은 국내 1세대 헌책방으로 꼽힌다. 45년째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는 이곳은 안에 들어서면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내음이 옛 향수를 자극한다. 서고에는 일제강점기 서적부터 1890년대 저서까지 수많은 동서양 고서들이 있다. 이곳에서 누군가의 추억이 깃든 책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이 밖에도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낸 최인아씨의 ‘최인아 책방’부터 연예인 노홍철의 ‘철든 책방’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서점을 내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도서정가세 영향, 동네서점 개성 부각


동네서점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도서정가제’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대형서점이 싸다’는 소비자의 인식이 무너지면서, 동네서점의 ‘접근성’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2014년 11월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동네서점의 이용건수는 2015년과 2016년에 각 6.2%, 0.3%씩 증가했다. 

최근에는 도서정가제의 역풍을 맞은 대형서점들도 변화에 나섰다. 대형서점인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지난해 대대적인 시설개선을 단행했다. 이들 서점은 내부 의자를 늘리고 편의시설을 확장해 이용객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서점의 변화에서 운신의 폭이 넓은 쪽은 동네서점이다. 최근 동네서점들은 커피나 술을 내놓고, 낭독회나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책의 가격이 비슷한 상황에서 동네서점만의 색깔이 이용객에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동네서점이 대형서점에 비해 장서 수가 적다는 점도 장점이다. 대형서점의 경우 독자의 수요보다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는 책을 전면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이용객이 서점에 가지는 신뢰를 떨어뜨리고 피로도를 높인다. 반면 동네서점은 단순한 이용객층을 겨냥해 큐레이션한 책을 비치하고 있다. 

◆출판시장 활기 불어넣을까


그렇다면 동네서점의 변화가 책의 수요 증가로 이어질까.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수긍하기 어렵다. 출판시장 불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독서인구가 감소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가운데 4명은 책을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변화를 시도한 동네서점들의 특징은 책을 파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다른 요소를 내세워 이용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커피나 상품 등을 판매해 수입원을 분산시킨 것이다. 심야서점을 운영하는 북티크의 관계자는 “북티크에서 책을 통한 수익은 전체 매출의 20%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동네서점의 변화에 따른 관심이 금세 식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 동네서점 관계자는 “서점에 와서 책은 보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손님도 많다”고 털어놨다. 서점이 관광지로 여겨지는 통에 정작 책이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서점의 변화가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판물의 디지털화로 e북이나 앱북과 같은 전자책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책을 대체하는 매체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동네서점 대부분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용객을 끌어들이는 데 그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한 동네서점 관계자는 “책보다 커피나 상품을 팔아 얻는 수익이 더 높다”며 “책만 팔아서는 월 임차료를 내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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