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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우리 살던 옛집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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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7 02:16:33 수정 : 2017-04-11 14: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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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1959~)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 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 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땅에 묻어주고 싶었던 하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위를 흘러
지나가는 별의 강줄기는
오늘밤이 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 )


이청준의 소설 ‘눈길’은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눈 쌓인 지붕을 이야기하면서 끝이 난다. 주인공의 노모가 “눈에 덮인 그 우리 집 지붕까지도 햇살 때문에 볼 수가 없더구나”술회하는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발견하게 된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집안 내력을 덮고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지붕이 한없는 슬픔과 희망의 상징으로 공감됐기 때문이다.

김영남 시인
인용시는 이문재의 첫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에 실려있다. 내 살던 집의 지붕을 노래한 부분이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외지에서 집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지붕이고, 외지로 나갈 때 가장 멀리까지 보는 게 지붕일 것이다. 이 시는 집을 떠날 때 지붕이 시인에게 남겼던 마지막 이미지들을 아련하게 떠올린다. 지붕 묘사가 슬프면서도 아름다워 시에서의 ‘눈길’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읽을수록 음악 같은 여운이 가슴 한구석에 오래 맴돌게 하는 것을 보면 시인의 타고난 감수성과 역량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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