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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청춘들 몸 뉘일 공간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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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05 21:04:07 수정 : 2017-04-11 15: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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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지인 4명의 결혼식이 몰려 있어 매주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이들의 결혼 소식을 접했을 땐 ‘2월이 결혼의 달인가? 서로 약속한 것처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결혼식을 2월에 잡을 특별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의문은 쉽게 풀렸다. 그들은 예식장 대관료가 저렴한 2월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결혼식장에 가는 발걸음이 다소 무거웠다. 신랑·신부들을 만나 축하의 인사를 나누면서 대관료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쓰지 않고 모아 봤지만 몸 뉘일 공간도 없더라.”

결혼식에서 만난 신랑·신부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는 않았다. 두 번째 삶을 개척한다는 결혼의 기쁨 또는 설렘의 한켠에는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신랑은 “첫 번째 삶(태어날 때)에는 무일푼이더니, 두 번째 삶(결혼)에는 빚만 남았네”라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대기업 사원, 5급 일반직 공무원, 금융맨, 기자 등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관문을 통과한 쟁쟁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 집 장만’의 과제 앞에선 그들 역시 무력한 청춘이었다. 3∼5년 동안 쪼개고 쪼개서 1억원을 모았지만 매매 6억원, 전세 4억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서울의 집값 앞에서 초라해질 뿐이었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한 소설가는 ‘신체의 자유는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로 정해진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면 내 지인의 자유는 딱 1억원어치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취직한 이들도 가진 돈으로 내 집 장만은커녕 전세로 자신의 몸을 맡길 자유조차 없다. 신체의 자유를 얻기 위해 부족한 돈을 대출받지만 월 30만∼50만원의 대출이자로 다시 구속받는다. 게다가 그만한 자유마저 없는 대부분의 청춘들은 월세를 살거나 부모님 집에 얹혀 살거나 모텔을 대실해 연인과 ‘로마니(집시)’ 같은 위태로운 사랑을 이어간다.

결혼식에 다녀오니 문득 P가 떠올랐다. P는 지난달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P와 그의 연인은 가난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이 몸을 뉘일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200만원이 채 되지 않은 월급을 쪼개서 모은 보증금으로 마련한 월세방을 전전하면서 불안하게 서로를 안았다. 언젠가는 둘만의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소망도 있었지만 잔인한 현실 앞에서 그들의 사랑은 생기를 잃은 꽃처럼 말라버렸다. P와 연인이 전세금 문제로 다투는 날은 늘어만 갔다. 결국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만약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있었다면 P는 연인과 평생 함께했을 것이고 나는 지난달 다섯 번째 결혼식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별 하나 없는 서울의 밤 도심을 걸으면 주택의 창문 틈새로 반짝이는 수많은 빛이 보인다. 하지만 청춘들이 몸을 기댈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청춘들은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꾸지만 동시에 절망한다. 가난한 서로의 가슴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쉬고 있다. 청춘들이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을 허(許)하라!

김범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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