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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고 모아 봤지만 몸 뉘일 공간도 없더라.”
결혼식에서 만난 신랑·신부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는 않았다. 두 번째 삶을 개척한다는 결혼의 기쁨 또는 설렘의 한켠에는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신랑은 “첫 번째 삶(태어날 때)에는 무일푼이더니, 두 번째 삶(결혼)에는 빚만 남았네”라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대기업 사원, 5급 일반직 공무원, 금융맨, 기자 등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관문을 통과한 쟁쟁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 집 장만’의 과제 앞에선 그들 역시 무력한 청춘이었다. 3∼5년 동안 쪼개고 쪼개서 1억원을 모았지만 매매 6억원, 전세 4억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서울의 집값 앞에서 초라해질 뿐이었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
결혼식에 다녀오니 문득 P가 떠올랐다. P는 지난달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P와 그의 연인은 가난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이 몸을 뉘일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200만원이 채 되지 않은 월급을 쪼개서 모은 보증금으로 마련한 월세방을 전전하면서 불안하게 서로를 안았다. 언젠가는 둘만의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소망도 있었지만 잔인한 현실 앞에서 그들의 사랑은 생기를 잃은 꽃처럼 말라버렸다. P와 연인이 전세금 문제로 다투는 날은 늘어만 갔다. 결국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만약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있었다면 P는 연인과 평생 함께했을 것이고 나는 지난달 다섯 번째 결혼식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별 하나 없는 서울의 밤 도심을 걸으면 주택의 창문 틈새로 반짝이는 수많은 빛이 보인다. 하지만 청춘들이 몸을 기댈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청춘들은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꾸지만 동시에 절망한다. 가난한 서로의 가슴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쉬고 있다. 청춘들이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을 허(許)하라!
김범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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