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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조선 문인 상상의 정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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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08 21:46:22 수정 : 2017-04-11 15: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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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들은 문학(文), 역사(史), 철학(哲)을 기본 소양으로 삼았는데, 한 가지 취미에 집착하는 ‘벽’(癖)을 지닌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글재주가 뛰어나도 출세하지 못하면 대부분 궁핍함을 면치 못했다. 당시 벼슬에 나가지 못한 문인들의 취미는 어떠했을까. 소외된 그들에게도 재물과 신분에 거슬릴 것 없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취미가 있었다. 바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정원인 ‘의원’을 경영하는 일이다.

18~19세기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원예와 정원 경영이 성행했다. 원예 취미와 정원을 가꾸는 일은 당시 문인들에게는 일반화된 취미였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요시한 당시 유교적 성향 덕분에 정원은 가장 적절한 자아표현 수단으로 통했다. 비용과 출세 유무와 상관없이 마음껏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의원기’ 저술은 널리 퍼지게 된다.

의원에 대한 기록은 허균(1578∼1607)이 1607년 화가 이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가 꿈꾸었던 정원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허균은 이정에게 상상 속의 공간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허균의 정원은 풍수지리적 사상에 따라 터를 잡고 정원을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 원예나 정원 감상, 독서, 동물을 키우는 곳으로 활용했다.

홍길주(1786∼1841)의 ‘숙수념’(熟遂念·사진)에 나타나는 의원 ‘오로원’(吾老園)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외원과 저택의 내부에 해당하는 내원으로 나뉜다. 홍길주의 저택은 현 서울의 감사원 일대로 추정되는데, 당시 배산이 되는 북산은 북악산에 해당하고 내원과 외원을 가르는 남강은 지금의 한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도성 정도의 규모를 자신의 정원에 대입한 상당히 대범한 상상으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의원기는 문인들의 이상향에 대한 관념이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정원이라는 공간 속에 탄생했다. 그 상상의 공간 속을 거닐고 은둔하는 등의 실천적 행위를 통해 현실 속에서 이상향을 찾고자 했다.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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