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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조선 문헌 적극 수용… 근대화 밑바탕 됐다”

입력 : 2017-03-09 21:30:48 수정 : 2017-03-09 21: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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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교수 ‘전쟁의 문헌학’ 서 주장 임진왜란 이후 동중국해 국가 가운데 상대국의 문헌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는 단연 일본이었다. 문헌의 형성과 유통을 분석하는 중심축 역시 일본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힌 조선의 역사서는 ‘동국통감’과 ‘삼국사기’였다. 조선시대 문신 서거정 등이 단군조선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동국통감이 일본으로 건너간 계기는 전쟁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동국통감의 판목을 약탈하면서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인들은 동국통감으로 일본의 한국사 교과서로 불리는 ‘신간동국통감’(新刊東國通鑑)을 만들었다. 신간동국통감은 동국통감을 저본 삼아 일본인 유학자 하야시 가호(1618∼1680)가 1667년 편찬한 책이다. 

에도시대의 ‘화한군담기략고대성’에 보이는 ‘동국통감’.
열린책들 제공
신간동국통감은 수 세기가 지나 조선으로 건너왔다. 1919년 제2대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신간동국통감의 판목을 총독부에 기증하면서다. 이로써 동국통감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조선으로 전래됐다.

이후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신간동국통감의 판목이 2014년 서울대 규장각에서 발견됐다. ‘일본의 대외 전쟁’ 등을 출간한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신간 ‘전쟁의 문헌학’에서 15∼20세기 동아시아, 특히 일본에서 전쟁을 통해 문헌이 어떻게 유통됐는지 추적했다.

‘신간동국통감’ 판목 중 하야시 가호의 서문 부분. 판목의 가로 길이는 약 2m다.
열린책들 제공
저자는 “상대국의 문헌과 정보가 수집되고 담론이 형성된 주요한 원동력은 상대국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우호적 감정이 아니다”며 “이 지역에서 과거에 발생했던 전쟁,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전쟁에 대한 경계와 준비에 근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는 관련 문헌이 무수히 제작됐다. 대표적인 것이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때 경험한 일들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이다. 징비록은 에도시대는 물론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임진왜란 문헌의 저본이 됐다. 일본에서는 징비록이 ‘삼국지’나 ‘수호전’처럼 제작되고 읽히는데, 저자는 이 같은 특성이 임진왜란이 갖는 특수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임진왜란은 일본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국제전이자, 막대한 피해를 낳고 패배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 대해 일본인들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전쟁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진구코고의 삼한정벌’이나 ‘임나일본부’에서 찾고, 기요마사 등의 장군들을 신격화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반복되는 칭송은 일본 스스로 또 다른 전쟁에서 정당성을 갖는 구실로 작용했다. ‘징비록’ 등 문헌은 1910년 한일합병과 같은 중요한 시기마다 일본 내에서 큰 관심을 얻었다. 

19세기 중반 일본에서 출판된 ‘에혼(繪本, 그림책) 조선정벌기’의 고구려 동명왕 전설 부분.
열린책들 제공
조선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문헌을 입수하는 데 공들였다. 일본에서 병법에 관한 학문의 기초인 병학 서적을 비롯해 다양한 책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조선 후기에는 많은 일본 도서가 유통됐다. 조선 후기의 학자 한치윤(1765∼1814)은 한국사 서적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1688년 일본에서 출판된 역사서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과 1712년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를 인용했다.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는 당시 조선에서 열람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본 서적을 읽고 무예 교범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와 시화 품평집 ‘청비록’(淸脾錄) 등을 펴냈다.

그러나 상대국의 병학에 대한 관심은 일본이 더 컸다. 이 같은 관심은 일본이 빠르게 근대화와 서구화를 수용하는 기반이 됐다. 저자는 “17세기 말기 이후 조선 왕조를 지배한 비(非)무사적 집단이, 무사 집단이 국가를 방어한다는 명분을 발휘하고 있던 대청제국과 도쿠가와(德川) 일본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군사학과 전쟁사가 비주류적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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