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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별을 보기 위해 몽골에 갔다. 가서 초원에 누웠는데 과연 주먹만 한 별들이 크리스마스 트리 알전구처럼 까만 밤하늘에 선명하게 빛났다. 별들은 찬란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별들은 그리운 것들의 배경일 뿐이었다. 시인의 별은 어디에서 빛나는가.

“별만 보자고 여기까지 와서 초원에 누웠건만,/ 어쩌자고 별 사이로 평생 내가 걷던 길이 보이나./ 목로에 모여 앉았던 동무들이 보이고,/ 남루한 옷가지와 찌그러진 신발짝이 보이나./ 별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말자고,/ 더 아름다운 것도 보지 말고 더 빛나는 것도 보지 말고,/ 오직 별만 보자고, 여기까지 와서 누웠건만./ 어쩌자고 별 사이로 하늘을 가득 메운 별 사이로/ 담장 안에 숨어 피었던 복사꽃이 보이고/ 진창을 건너가던 빨간 등불이 보이나./ 별 사이로 하늘을 가득 메운 별 사이로 마지막엔/ 어쩌자고 철없이 여든을 넘긴 늙은이 하나 보이고,// 오직 별만 보자고, 여기까지 와서 누웠건만.”(신경림, ‘고비에 와서’, ‘대산문화’ 2017년 봄호)

어쩌자고 몽골 초원까지 가 밤하늘에서 그리운 것들만 보는가. 시인은 촛불로 온기를 찾던 추운 거리에서 답을 찾았다. 정작 시인의 별들은 몽골 밤하늘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 사막과 초원까지 가서 찾던 별이 보인다/ 종로 을지로 그리고 서울을 온통 뒤덮은/ 뜨거운 숨결과 숨결 속에 별이 보인다// 술집을 메운 내 옛 친구들의 야윈 얼굴에/ 죽은 친구들 멀리 간 친구들이 어른대는 술잔에/ 이것이 나라냐는 탄식 속에 별이 보인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어린 눈망울에/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속에/ 서로 잡은 손과 손 어깨와 어깨 사이에/ 인도와 소백산까지 가서 찾던 별이 보인다// 너무 어두워 서울 하늘에서는 사라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보인다/ 눈비도 아랑곳없이 늦도록 흩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촛불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별이 보인다’)

겨울 내내 광화문에 나와 촛불을 들고 스스로 별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찬란한 별들이 내려와 있었다. 지상의 별들은 마침내 어둠을 몰아냈다. 별빛 같은 촛불이 새벽을 밝혔다. 새벽이 와서 이제 별빛은 희미해졌지만 별들이 사라진 건 아니다. 별들은 여전히 하늘에서 찬란하다. 이 땅에 다시 밤이 오면 언제라도 하강할 태세로, 돌올하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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