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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지하철 손잡이 다툼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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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2 21:20:09 수정 : 2017-04-11 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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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왜 이러세요.”

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가다 작은 소란을 목격했다. 지하철이 종로3가역을 지날 때쯤 벌어진 일이었다. 한 청년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할아버지와 청년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다툼의 이유는 손잡이였다.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잡고 있는 손잡이를 양보하라며 호통을 쳤고, 청년은 이에 질세라 말대꾸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툼을 벌이는 장면은 여러 번 목격했지만, ‘손잡이 다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권구성 문화부 기자
청년은 주변의 시선을 인식했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저한테 왜 이러시냐”고 항변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어린 놈이 어디서 말대꾸냐”며 “하여튼 요즘 것들은”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난데없이 손잡이를 내놓으라는 말에 청년도 억울했는지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청년은 “할아버지는 어차피 돈도 안 내고 타면서, 손잡이까지 양보하라고 난리시냐”며 할아버지의 무임승차를 들먹이기까지 했다.

흔치 않은 광경을 봐서인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령화 사회라더니 이제는 지하철에서 좌석은 물론이고 손잡이까지 양보해야 하나 싶었다. 이러다가는 손잡이에도 노약자 전용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손잡이를 양보해달라는 말에 무임승차를 들먹이는 청년의 야박함과 수많은 손잡이를 두고 하필 청년이 잡고 있는 손잡이를 양보해달라고 한 할아버지의 고집이 우리 사회의 세대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세대갈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꼰대’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는지 요즘에는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손잡이 다툼을 목격했던 종로3가역 인근에는 노인들이 많이 찾는 탑골공원이 위치해 있다. 공원의 맞은편에는 외국어 학원들이 즐비해 있다. 학원가는 취업난에 시달리며 스펙을 쌓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청년들로 북적인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사뭇 다른 두 풍경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인과 청년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세대갈등의 본질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와 ‘취업난’이라는 각 세대의 난제가 불편한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노인과 청년의 소통이 단절되면서, 이제는 동시대인이라는 인식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탄핵 찬반 집회가 맞붙었던 서울 광화문에서는 찬반 단체의 온도차만큼이나 연령 차이도 뚜렷했다. 선거 결과만 봐도 60대 이상은 보수 성향 후보를 지지하고, 20∼30대는 진보 성향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세대갈등이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세대갈등은 필연적인 결과다. 빨리 자란 나무일수록 나이테의 간격은 넓은 법이다. 그 간격을 억지로 좁힐 수는 없겠지만, 서로 간의 ‘다름’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내 말이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강요로는 세대갈등을 극복하기 어렵다. 세대 간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 서로를 향한 작은 이해와 배려가 든든한 손잡이가 돼 주길 희망해본다.

권구성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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