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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잊혀진 역사… 찰나의 순간에 담긴 이야기

입력 : 2017-03-21 20:53:02 수정 : 2017-03-21 20: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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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독일현대사진’전 그림은 강력한 라이벌인 사진이 등장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무던 애를 썼다. 인상파도 그중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사진은 처음엔 그림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회화적 사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독립적 매체로서 나름의 세계를 가지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 화가의 영역이었던 자유로운 이미지 구성은 물론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시도를 하게 된다. 회화적 사진을 넘어 사진만의 독자적 표현방식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림과 사진은 서로를 자극하며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오는 5월28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독일현대사진’전은 이런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통독 이후 독일 전역에서 활발히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독일 현대사진작가 10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다.


폐광촌의 상실감을 담고 있는 베르게스의 ‘가르츠바일러’.
40~50대 작가들은 뒤셀도르프사진학파 이후 세대들이다. 시대적으로 포스트모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다. 뒤셀도르프사진학파를 이룬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 그리고 그의 제자들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슈트루트, 칸디다 회퍼 등의 직후 세대다. 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모티프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비교·분석하는 ‘다큐멘터리 언어’를 구사하지만, 사소한 일상과 개인적 감수성을 예술표현의 주제로 삼게 된다. 엄격하고 신성한 이미지로부터 친근하고 인간적인 작업들을 보여준다. 역사·사회적인 소재조차도 말랑한 감수성으로 소화해낸다. 대형출력 컬러사진, 디지털이미지 등 폭넓은 현대기술을 사용하여 과거 화가의 영역이었던 자유로운 이미지 구성은 물론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1944년 건존된 U보트를 찍은 코흐 ‘키일 근교 라보에의 잠수함’.
이런 흐름의 연원은 나치정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 독일 사진은 아방가르드한 뉴 비전과 신객관주의로 대표된다. 바우하우스에서 모흘리 나기가 주창한 뉴 비전은 모던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인 재현 개념과 전혀 다른 새롭고 다양한 시각을 모색하며 사진이 전통적인 회화를 대체하고 사진을 미래의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매체로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신객관주의 사진은 작가의 주관적인 의도나 감정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기계적으로 정확히 표현하려고 했다. 이런 노력들은 1933년 나치정권이 수립되면서 금지되고, 독일의 사진은 나치정권의 선전수단으로 전락했다.

사진을 독자적 매체로 이끌려는 1920년대 독일사진의 움직임은 뒤셀도르프사진학파와 그 이후 세대들이 계승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신체이미지를 장식패턴화시킨 괴디케 ‘달로의 여행’.
전시장 1층엔 라우렌츠 베르게스가 독일 북서부 루르 폐광촌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소개된다. 쇠락해 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상실감을 담았다. 2층에선 소방차 사다리에 올라가 높은 위치에서 촬영된 사진을 볼 수 있다. 해변에 한 번도 출항하지 못한 U보트 사진은 역사를 불러내고 있다. 인물의 사적인 모습을 포착한 알프레히트 폭스의 작품도 이웃해 걸렸다. 도쿄 등 아시아 도시들의 일상적 모습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니콜라 마이츠너 사진, 한 여성을 소설속 주인공처럼 카메라에 담고 있는 하이디 슈페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사진을 유형별로 나눠 보여주고 있는 페터 필러의 작품은 대중매체의 사진편집 코드를 버젓이 차용하고 있다. 신체 부위를 장식패턴으로 다른 사진들과 함께 배치해 벽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클라우스 괴디케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전시가 사진이 독자적 매체로 나아가는 큰 흐름의 여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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