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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ports] 아듀! 은반의 모차르트… 떠나는 아사다 마오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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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3 21:34:50 수정 : 2017-04-13 21: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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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출중한데 외모까지 뛰어난 선수라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 미운털이 제대로 박혀 마지막 순간까지 박수를 받지 못한 선수가 있다. ‘피겨여왕’ 김연아(27)와 평생의 라이벌로 지내면서도 그를 끝내 넘지 못했고 국제 대회 편파판정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일본의 ‘국민 여동생’ 아사다 마오(27·사진)다.

일부는 김연아의 그늘에 가려 2인자에 머물렀던 비운의 아사다를 두고 18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떠올린다. 그가 당대 최고의 음악적 재능을 갖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게 열패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살리에리가 25세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궁정음악가로 이름을 떨칠 무렵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게 번번이 기회를 빼앗겼다. 모차르트는 부친에게 1781년 보낸 편지에서 “황제의 눈에 든 인물은 살리에리 하나뿐이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결국 철저한 고증에 입각하면 현대판 살리에리의 대명사가 된 아사다는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쳤던 빙판 위 모차르트였던 셈이다.

아사다는 천재였다. 피겨선수였던 언니 아사다 마이를 따라 스케이트를 시작한 그는 주니어 시절 군계일학의 점프 실력을 과시하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깜찍한 외모로도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열도의 최고 스타로 군림했다. 아사다가 김연아와 처음 만난 건 200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이다. 당시 아사다는 이미 12세 때 최초로 성공했던 ‘트리플 악셀(공중 3.5회전)’을 재차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는 자서전에서 “왜 하필 아사다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라며 속상했던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후 두 선수의 엇갈린 명암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2006년을 기점으로 무섭게 성장한 김연아에게 아사다는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아사다는 일생의 숙원이던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마저 김연아의 벽에 막혀 은메달에 그쳤다.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에 집착했다. 하지만 주니어 시절보다 부쩍 커진 키와 체중을 무릎이 버텨낼 리 없었고 성공률은 점점 낮아졌다.

김연아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아사다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스케이트 날을 갈았다. 그러나 라이벌을 잃은 아사다의 전의는 예전만 못했고 최근 빙판에 작별을 고했다.

지난 12일 은퇴 기자회견을 연 아사다는 김연아와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15, 16세 무렵부터 함께 주니어 및 시니어 대회에 출전했다. 서로 정말 좋은 자극을 주고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아사다는 흰색 블라우스와 재킷을 입고 밝은 모습을 유지했지만 마지막에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사다는 주니어 시절부터 김연아와 16차례 맞붙어 5번 이기는 데 그쳤다. 김연아와 다퉜던 지난 시절이 모차르트의 소나타 선율이 되어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비록 아사다의 피겨인생은 애잔한 소나타로 끝이 났지만 평창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버텼던 끈기만큼은 박수 받을 만하다. 한국 팬들도 김연아 못지않은 피겨 열정을 보여준 아사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는 것은 어떨까.

안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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