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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열림’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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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0 21:57:39 수정 : 2017-04-20 21: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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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토론 가장 큰 힘은 듣는 능력
닫힌 창문 뒤의 민심 읽어낼 줄 알아야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좋은 토론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토론에서 이기는 법’을 아는 것이 토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토론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뛰어난 논리와 화술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난상토론,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의 토론에서 실제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듣는 능력’이다. 때로는 진정한 토론을 위한 질문이라고 보기도 힘든 공격적 발언이 쏟아질지라도,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진의를 해석하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질문과 비판에 열린 마음으로 임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우리 마음은 창문을 닮았다. 마음을 열어두면 세상 모든 것을 향해 활짝 개방되지만, 마음을 닫으면 단단한 벽이 돼버린다. 창문은 열려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서는 잠시 닫아둘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열기 위한 것이 창문이다. 정호승 시인은 ‘창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은 닫으면 문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이 창이 되기 위해서는/ 창과 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 /나는 세상의 모든 창문이/ 닫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다.” 시인의 담담한 고백이 가슴을 울린다. 좋은 시는 이렇게 읽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독자의 마음을 활짝 열어 젖힌다. 세상의 모든 창문이 닫힘을 위해서가 아니라 열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야말로 타인과 나의 다름을 존중하는 내면의 힘이다. 


정여울 작가
그런데 막상 타인을 향해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끊임없이 말을 한다 해도, 돌아보면 그 말들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숨기기 위한 말일 때가 많다. 김중일의 시 ‘창문의 소용돌이’는 마음이라는 창문을 통해 우리가 소통하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시인은 창문이 “사라지려는 힘과 나타나려는 힘이/ 같은 힘으로 떠밀고 있는” 존재임을 발견한다. 창문으로는 온갖 사람들의 천태만상이 다 보인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지? 자신이 만든 요리에 감탄하는 조리사”도 보이고,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창문에 불어넣은 입김이 사라지기 전에 잽싸게 싸인 연습을 하는 가수지망생”도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창문을 꼭꼭 닫아 놓지만,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사람에게는 닫힌 창문마저도 어떤 간절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김중일 시인은 ‘사거리가 보이는 창문, Heat Roller’라는 시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여보세요, 하나의 창문 속에/ 너무 많은 창문을 숨겨놓으셨네요/ 저 창문들/ 언제 다 읽을까요.” 단열과 방음을 위해 이중 삼중으로 덧댄 현대사회의 창문들처럼, 우리 마음은 이렇게 여러 겹의 창문들로 겹겹이 숨겨져 있다. 이쪽에서는 한사코 창문을 닫아 놓고 있어도, 닫힌 창문 뒤로 꽁꽁 숨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관찰력과 통찰력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리더십일 것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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