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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와 성당에서 인상 깊은 체험을 했다.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에 가서 밤에 바람소리를 들었고, 봄밤 광화문 성공회 성당에서 유러피안 재즈 연주를 들었다. 작지 않은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무엇에 쫓겨 사는지 내내 짓눌린 듯한 느낌이 떠나지 않았던 것인데, 정작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산사의 한밤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고, 성당에서 피아노와 베이스와 드럼이 제각각 신명나게 가락과 리듬을 타고 있을 때 순간순간 붙잡은 생각들이다.

위로란 그렇게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홀로 고독해질 때, 그 고독 속에 깃들이는 어떤 소리는 아늑하고 따스한 위로의 기능을 한다. 성당을 울리는 재즈피아노 소리는 차가운 동굴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명징함으로 정수리를 두드렸다. 둔중한 베이스의 현은 간혹 명치끝을 울렸고 드럼의 연타는 심장을 잘게 다듬이질하곤 했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는 한국 청중을 위해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레퍼토리에 끼워 넣기도 했다.

요절한 유재하는 노래 속에서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 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받아 집에서 돌아와서야 펼쳐보면서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고,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라고 눈물짓는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유행가가 주는 위로의 힘은 만만치 않다. 귀갓길 양희은이 이어폰 속에서 불러주던 “아름다운 그대/ 그 어떤 어려움도 난 두렵지 않아/ 이 사랑 때문에/ 절망이 우릴 막는다 해도/ 그대가 있음에/ 슬픔이 슬픔을/ 눈물이 눈물을/ 아픔이 아픔을/ 안아줄 수 있다”는 ‘그대 있음에’의 한 구절도 유재하의 위로와 겨룰 만했다.

산사에서는 바람소리가 쓸쓸하기보다는 위로가 되었다. 미황사의 밤, 동거차도가 내려다보이는 다도해에서 밀고 올라오는 바람은 유독 거셌다. 남녘 활엽수들은 머리채를 길게 흔들며 울었고 우수수 뒤채는 그 소리들은 머릿속 먼지들을 함께 쓸어가는 듯한 위안으로 다가왔다. 우울하고 머리가 무거우신가. 잠시 하던 일을 접고 밖으로 나가 우주가 운행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는 가청 범위를 넘어서서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대 마음속을 지나가는 어떤 소리는 조용히 귀 기울이면 잡히지 않을는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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