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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몸 불편해도… 내 힘으로 남 돕는 데 장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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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2 21:04:57 수정 : 2017-05-12 21: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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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약손봉사회’ 만든 지체장애 2급 한의사 이승헌씨 맥을 짚고, 침을 놓는다. 여느 한의사와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가 목발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을 돕는 데 열심이다. 매달 중증장애시설 등을 찾아 장애 아동과 노인에게 의료봉사를 한다. 빼먹는 일이 없다.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려고 자신의 호를 따 ‘약손 봉사회’까지 만들었다. 장애인을 돕는 지체장애 2급 한의사 이승헌(48)씨 이야기다.

12일 울산시 남구 옥동에 위치한 이씨의 한의원을 찾았다. 통통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 미소 띤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밝다. 그의 첫인상이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다.
이승헌 한의사가 울산시 남구 옥동 자신의 한의원에서 장애인 봉사에 나선 계기 등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울산=이보람 기자
가장 궁금한 것을 먼저 질문했다. “몸도 불편한데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열심인 이유가 뭔가요?” 이씨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당연한 거예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말문이 막혔다. 그럴싸한 거창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씨가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이씨는 돌이 되기 전 소아마비로를 앓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어릴 때에는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고 했다. 부모나 형, 누나들이 그를 다르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의 부모는 그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보며 한탄하지도, 눈물 짓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지도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자신만 집에서 기어다닌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그는 자신의 장애를 알게 됐다고 했다.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해소하는 일은 아직도 멀다. 그가 어렸을 적에는 그 편견이나 차별이 덜 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처음 받는 곳, 학교. 학창시절이 궁금했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없어 일반 학교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물론 처음에는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죠. 하지만 제 특유의 친화력으로 나중에는 모두 친구가 됐습니다”라며 웃었다.

때로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때로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어머니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다. 교실이 나무 바닥이던 시절, 왁스칠을 하는 날이면 이씨의 세상이었다고 한다. 그가 나서서 친구들에게 놀이를 제안했다. 누가 먼저 기어서 왁스칠을 끝내나. 기어다니기 ‘프로’인 그의 승리는 당연했다.

땅 따먹기, 팔씨름, 앉아서 권투하기. 모두 다리가 불편한 이씨도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자신의 세계에 친구들을 끌어들여 놀면 된다.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친구가 늘어난 이유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6월, 전남의 한 한센인 치료병원에서 처음으로 다리수술을 받았다. 1년에 한 번씩 3차례 수술을 받은 뒤 보조기와 목발의 도움으로 혼자 걸을 수 있게 됐다. 수술은 방학 때만 했다. 다른 학생과 똑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부모의 교육방침 때문이다. 그 덕분에 개근상을 놓친 적이 없다.

한의사가 되기로 한 것은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 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치과의사와 한의사, 금은방 주인 정도였다. 이왕이면 자신처럼 아픈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학원까지 다니며 재수 끝에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 때부터 ‘청심’이라는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봉사활동에 나섰다. ‘내 힘으로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기쁨에서였다. 의료지식이 없을 때에는 음식을 만들고, 허드렛일을 도왔다. 그는 봉사를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때문이었다.
정식 한의사가 된 이후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이씨는 필요하다고 하는 곳은 어디든 갔다. 울산 남구보건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다른 사람에게 둘째 출산 소식을 듣고 그제야 허겁지겁 아내와 아이를 보러 간 일도 있다.

이씨는 “한의원을 마친 오후 7시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진료한다”며 “그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기가 막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덧붙였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따로 봉사회를 꾸린 것도 좀 더 도움이 필요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회원들이 찾는다. 봉사활동에 필요한 비용은 30여명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이씨의 사비로 충당한다.

그는 장애아동을 위한 장애인 전문직업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그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컴퓨터공학, 금은세공 등 보다 많은 분야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사회 한 구성원으로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갈수록 경기가 어려워지는 등 여건이 나빠져 학교 설립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편견이나 차별받지 않고 사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며 “그런 세상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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