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 지 20일가량 지난 문재인 대통령의 초반 행보를 보며 많은 국민이 드라마 클라이맥스 장면을 볼 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취임식에서의 ‘탈권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 위로 등의 행보에 ‘파격의 연속’, ‘감동의 드라마’ 등 수식어가 등장하고 있다. 불통 논란을 겪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르게 문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문 대통령의 성격이 소탈하고 격의 없기에 가능한 모습일 듯싶다.
이귀전 문화부 차장 |
역대 대통령들의 휴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단어는 독서와 정국구상이다. 대통령이 휴가에서 읽은 책은 늘 화제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여름휴가 때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부교수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읽었고, 이 책은 이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다룬 ‘넛지’ 등을 휴가 때 읽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등 수십권을 임기 중 휴가 때 탐독했다. 그 이전 대통령들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래와의 대화’, ‘비전 2010 한국경제’ 등을, 김영삼 전 대통령도 ‘미래의 결단’ 등을 휴가지에서 읽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책벌레’여서 휴가 때 책만 읽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또 휴가 때 사진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푸른 나뭇잎을 보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향후 정국 구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휴가 때마저 일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이란 자리의 무게감 때문에 휴가를 편히 즐기기가 힘들 수 있다. 그래도 휴가는 휴가다. 이젠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멀리 떨어진 휴가지에서 골프를 치는 미국 대통령 등 다른 나라 대통령의 휴가 모습은 아직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휴가 가서 여행지를 둘러보고, 격의 없이 지역민과 어울려 막걸리나 지역 소주를 앞에 두고 지역 대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임기 5년 동안 여름휴가는 다섯 번 있을 것이다. 거기에 겨울에도 휴가를 가고, 봄과 가을에도 짧은 휴가를 즐길 수도 있을 듯싶다. 그러면 전국 광역시·도를 한 번씩 들러 휴가를 즐기고, 지역민을 만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5월8일 어버이날을 법정공휴일로, 오는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것을 약속했다. 휴일만 늘릴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야 휴가를 즐기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귀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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