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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조선 중기 소통·조화의 상징 홍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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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7 21:03:28 수정 : 2017-06-07 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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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건축의 대표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공간의 흐름이다. 대문, 마당, 마루, 방은 시각적으로 이어지면서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다양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러한 공간의 연결과 조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문(門)이다.

궁궐에도 동서남북에 문이 놓이는데, 특히 남쪽에 놓인 문을 정문(正門)이라 한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창경궁의 홍화문(사진)이 정문이다. 이들의 건축 형식은 약간씩 다른데, 광화문이 홍예문을 갖춘 돌로 높게 쌓은 기초 위에 2층 문루를 올렸지만, 돈화문과 홍화문은 낮은 기단에 바로 2층의 문루를 세웠다.

이 가운데 창경궁 홍화문은 다른 문과 달리 매우 독특한 용도로 활용된 적이 있다. 영조는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긴 52년간 재위하였다. 비록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달라지는 시대적 변화에 맞춰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고 학문을 진작시켰으며, 탕평책을 통한 왕권의 안정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그는 1749년 음력 8월, ‘임문휼민의(臨門恤民儀)’를 직접 만든다. 임금이 직접 궁궐 정문에 나아가 백성들의 어려움을 듣고 위로하며 곡식을 나누어주는 궁중의례다. 영조는 의례를 만든 지 채 열흘이 되지 않아 홍화문에 왕세자를 거느리고 나아가 의례를 행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번 백성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위로하였다. ‘조화(造化)를 넓힌다’는 뜻의 ‘홍화(弘化)’에 맞게, 임금이 직접 백성의 의견을 묻고 듣는 소통의 조화를 이루는 장소로 사용된 것이다.

문은 필요한 곳에 위치하여,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항상 닫혀있는 문은 벽과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는 세대 간 의식 차이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비교적 크다고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을 통하여 세대 간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홍화문을 보면서, 그 시대의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백성과 소통하고 위로하려 애썼던 영조를 떠올리며, ‘홍화’의 뜻을 되새겨본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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