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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하우스 하면 많은 이들이 시드니오페라하우스를 떠올린다. 지금은 호주의 랜드마크이지만 건설 당시에는 곡절이 많았다. 1950년대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음악인 주도로 극장 설립 운동이 일자 주정부는 1958년 덴마크 건축가 예른 웃손에 설계를 맡겨 착공했다. 1963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10년이나 지연되고 공사비도 10배 이상 늘자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1973년 완공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연간 3000회 공연이 열리고 200만명이 찾는 세계인의 명소다.

서울시가 한강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만들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4년 계획을 밝히면서 닻을 올렸다. 당시 세계적 도시인 서울에도 수준 높은 오페라 전용극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서울시는 274억원을 들여 노들섬을 사들이고 유럽의 오페라하우스를 연구했다. 오세훈 전 시장도 바통을 이어받아 오페라하우스를 포함하는 ‘한강예술섬’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1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자 사업이 중단된 데 이어 이번에 사업 백지화가 확정됐다.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논쟁은 초기부터 뜨거웠다. “관람료가 1만원이 안 되는 영화도 보기 어려운 서민이 많은데 수십만원 하는 고가 오페라극장이 말이 되느냐”는 반발이 많았다. 반면에 “서울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긴 안목의 문화인프라 투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백지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예술인들이 적지 않다. 한 인사는 “설계비 등 277억원을 공중에 날리게 됐다”며 “정당과 진영을 뛰어넘는 문화인프라 구축은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다”고 개탄했다. 그는 “10여년간 서울시 공무원이나 관련 인사들이 유럽의 오페라하우스들을 직접 둘러보며 쌓은 노하우를 잘 간직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국가의 수도에 걸맞은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추진돼야 한다”고도 했다.

서울시가 사업을 접은 데는 타당성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정치적 판단에 무게가 실린다. 예술을 정치 논리나 표로 계산해선 안 된다. 서울시의 오페라하우스 백지화가 아쉬운 이유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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