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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행동하는 양심 … 공익제보자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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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6 18:20:42 수정 : 2017-06-16 18: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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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다니던 고등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익명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모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교과서만 읽다가 수업을 마쳐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여부는 둘째치더라도 과연 그런 방식의 문제제기가 맞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대신 학생부 선생님은 학생회장이었던 나를 불러 “작성자를 찾아내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던 터라 몇 차례 더 불려가 질타를 받는 것으로 대충 때웠다.

비슷한 시기, 이번에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게시물이 작성됐다. 앞서의 제보자 색출 시도가 효과를 본 탓이었을까. 이 게시물에는 ‘가만히 좀 있으라’, ‘그나마 이대로가 좋으니 괜히 나서지 마라’같이 글쓴이를 질책하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지난 12일부터 본지 탐사기획 ‘갈 길 먼 공익제보’ 시리즈가 포털사이트에 게재되자 “기자가 군대는 가 보고 이런 기사를 썼는지 모르겠다”는 조롱 섞인 반응이 심심찮게 보였다. 사고가 터지면 은폐하기 급급한 조직을 상대로 공익제보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법과 제도의 개선이 어렵다 한들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면 안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에 기반한 인식을 바꾸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부에서 잘못된 일을 떠들어봤자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면 공익제보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공익제보를 칭찬받아 마땅한 일로 평가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지는 않겠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간이 걸릴지언정 제도 개선을 통해 인식 개선을 이끌어낼 수밖에.

이우중 특별기획취재팀 기자.
그래서 외롭지만 의로운 싸움을 이어나간 공익제보자들이 더욱 빛난다. 취재차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으며 자연스레 그들의 투쟁 과정에 나를 대입시켜 봤다. 부끄러운 고백이거니와, 그들의 상황에 놓인다면 그처럼 당당하게 조직에 맞설 수 있으리란 생각이 감히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한 공익제보자가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해 낯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결국 나 같은 사람조차도 조직 안에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양심을 지킨 대가로 나머지 모두를 잃어야 했던 이들에게, 그 위대한 용기에 다시 한 번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

여담으로 일련의 사태를 겪은 뒤 고등학교 홈페이지는 실명제로 바뀌었고, 다시는 ‘그런’ 글을 볼 수 없었다.

이우중 특별기획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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